초등학생 아이를 키운 지 어엿이 4년. 이제는 내가 학부모가 된 지도 오래고, 직장에서 꽤나 높은 자리를 맡고 있는 것도 오래다.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은 꽤나 벅찬 일이다. 남편과 이혼한 지 5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지금은 헐떡거리고 있다. 아이는 아침에 일찍 깨워서 같이 아침밥을 차려 먹은 다음에 각자 자신의 자리로 출근한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며, 현재 호기심이 많은 상태라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이와 놀아주려고 하지만, 아이는 이제 나보다 친구들이 더 좋은 때다.
아이 때문에 회사에서 전화를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가 누군가를 때려 결국 교장실까지 불려갔다는 등, 사고뭉치라는 낙인 때문에 선생님도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 아빠 없는 티 낸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나 보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내 잘못처럼 느껴지고, 내가 잘못해서 결국 아이까지 영향을 받는구나 싶어 밤마다 흐느끼며 운다.
아이는 언젠가는 정신 차리겠지 싶었지만, 생각보다 방황은 길었다. 특히 지금 4학년 때 찾아온 반항은 나한테도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와 밥을 먹으면 아이는 숟가락을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반찬 투정을 한다.
"나는 소시지가 먹고 싶은데, 이런 것도 못 사다 주는 엄마야?"
하면서 내 가슴을 찌른다.
"엄마가 오늘 바빠서 못했네. 내일 아침에 해줄게. 저녁에는 먹고 싶은 거 먹어. 어때, 그러면 됐지?"
"엄마는 항상 그런 식이야. 나는 지금! 지금이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사이, 아이의 우렁찬 기세에 눌려버리고 말았다. 아이도 눈물이 조금 맺혔다.
"이거 다 엄마 때문이고, 엄마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
아이는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그대로 읽었다. 그러면서 밥상을 툭 치고 나갔다.
아이는 남성성이 강해져서인지 지 아빠를 닮아가는 게 보인다. 폭력적이었던 남편의 모습을 어릴 때 봐서 그런가? 아이 역시 배워서 나한테 해코지하려고 달려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내야 하는데 얼어붙고 만다. 내 뱃속에서 낳은 아이가 내 아이 같지 않을 때가 많다. 아이를 혼내려 들면 이젠 아이가 겁을 먹는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을 명백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잘못을 혼내면 아이가 또 양심상 자신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봐 더 엄격하게 훈육한다. 회초리까지 가져와서 아침에 시간도 없는데 종아리에 석 대를 때리고 잘못을 빌라고 말한다. 아이는 당연히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잘못했다고 말하고 학교에 나간다. 나는 그 난장판을 치우느라 회사를 5분 지각하고 만다.
회사에서는 똑 부러져서 여자인데도 과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 과장이 만년 과장이 아니라 이번 신참 중에서 가장 빠르게 달았다. 일을 더더욱 열중한 탓인지 진급이 빨랐다. 그러자 사원들 모두 나를 동경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영어, 러시아어, 독어까지 섭렵하고 거래처와 유창하게 대화하며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거래처에서 있을 생산 공장도 현장으로 달려가 직접 보고 오는 수고까지 하니, 꼼꼼하다는 칭찬도 받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일부러 하는 것은, 이젠 나이가 들면 또 ‘여자’라는 이유로 잘릴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특출나야 잘리지 않는다. 나 정도의 엘리트가 되어야 정년까지 보장받고 아이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잊고 싶은 과거에 집착하기 싫어서 현실에 매달린 것도 사실이다.
집에 들어오면 또 한숨이 난다. 아이는 분명 유모 아줌마 덕분에 잠이 들어 있는 상태일 것을 아는데도 아이의 얼굴을 보기 두렵다. 아이가 나한테 했던 해코지를 오늘 학교에서도 했을까. 그런 못된 마음이 길러진 것은 내가 직접 키우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족한가 보다. 나는 언제나 부족하다. 아이를 낳고 나서 계속 드는 생각이다.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이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난장판. 쓰러져 있는 접시들과 흙바닥. 쏟아지는 빨랫거리. 매트 사이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붙어 있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