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

by 후드 입은 코끼리

나는 언제부터 축의금을 낼 때마다 장부에 적는다. 장부에 적을 때 그 사람의 이름과 축의금 액수뿐만 아니라, 그 액수를 준 동기도 함께 적는다. 그렇게 적다 보니 친구들을 칼같이 차단하게 되거나 더욱 친해지는 지표가 되었다. 돈이란 참 무섭다. 이렇게 우정이 한 번에 갈기갈기 찢기기도 하고, 단단히 풀칠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테이크 마이 머니"를 시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상대를 찬찬히 뜯어보고 알아보고, 무엇보다 인성이 어떤지 상세히 적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를 만들었다. 이 노트는 내 주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쓰는 ‘친구책’인데, 거기에 만날 때마다 느낀 점과 사람에 대한 인상을 챕터별로 나눠 적는다. 나는 괴짜 같아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라도 사람을 분류해야 마음이 편하다.


또 다른 결혼식이 생겼다. 이번에는 대학 동기인데, 그나마 4년 동안 같이 공부했던 사이였고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친구라 각별한 편이었다. 매년 4번 이상 얼굴을 보는 친구이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금방 전화해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런 친구인 만큼 좋은 선물과 축의금을 넉넉히 준비해 보내고 싶었다. 우선 친구와의 일화를 떠올리며 친구 노트를 열어봤다. 친구에 대한 평가는 5점 만점에 4점을 기록한 친구였다. 힘들 때 바로 뛰쳐나와주는 그런 친구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술에 취해 집에 제대로 가지 못했던 날, 파출소에서 나를 붙잡고 있을 때 새벽에 전화받고 나와준 친구였다. 또, 가정 내 불화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그 친구에게 전화해 울며 토로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는 축의금을 20만 원 이상, 50만 원 이하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식 당일이 되기도 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만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며 청첩장도 직접 주겠다고 했다. 요즘 들어 이렇게 청첩장을 직접 주는 문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을 해줬다는 점에서 친구가 더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밥집도 오마카세로 예약해서 나를 대접했다. 그러면서 나눈 인생 이야기는 특별했다. 우리의 만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우정이 이어져 온 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눈물이 찔끔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친구는 좋은 곳으로 가니까 말이다. 친구 말에 따르면 이번에 결혼하는 사람이 워낙 번듯하고 사람이 좋아 첫눈에 결혼 상대임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았지만, 이렇게 신나고 좋은 날에 돈을 냈으니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결혼식날이 되었다. 나는 집에서 가장 예쁜 드레스에 브로치를 달고 샤넬 가방을 들었다. 하객으로 참석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샤넬백을 들고 있었다. 다 같은 브랜드이지만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샤넬백이 어떤 가죽인지, 어떤 문양인지에 따라 광택감과 빈티지 여부에 따라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달랐다. 역시 결혼식은 피곤하다. 사람들끼리 이리저리 재는 것이 기본이다. 나도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샤넬백을 준비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축의금을 내고 나왔다. 아무리 각별한 친구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직접 전하는 것은 낯간지럽다. 결혼식에서 보는 내용들은 뻔하고 재미없기도 했다. 신부 대기실에서 얼굴을 보고 사진만 찍고 나왔다. 이후 결혼식장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 담배는 가장 달았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와서 불을 끄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나는 비웃으며 차로 갔다. 그 사람에게도 담배 냄새가 많이 났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며 담배 하나를 더 꺼내 피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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