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같은소설: 일찍 철을 들어서 아픔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3년 만에 재수 끝에 원하는 학과로 들어오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 나는 그저 공무원이 하고 싶었다. 행정학과에 들어가서 5급 공무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잘리시자마자 들었던 생각이 공무원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고2 때부터 무너지는 가정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공무원 시험에 대해서 알아보았더니 9급, 7급, 5급 중에서 골라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쉽고 빠르게 9급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원체 공부머리가 있어서 학교에서도 지방권 대학을 권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서울 중하위권 학교는 붙을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욕심이 나서 결국에는 혼자 독학으로 재수를 했다. 생활비를 계속 얻어 탈 수 없는 상황이라, 카페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3번 하면서 수능 공부를 했다. 전업 수험생이라기보다는 반쪽짜리 수험생이었다. 그렇게 재수하고 나면 좋은 대학을 붙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가혹하게도 몇 점 차이로 나는 낙방했다.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분명 노력했고 효율적으로 공부했는데, 상향 지원하는 바람에 갈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결국에 선택지는 다시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전업 수험생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선택지에 없던 일이다. 그래도 꿀알바로 불리는 편의점 알바로 바꿔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하고 문제를 풀거나 책을 읽었다. 그렇게 틈틈이 공부를 하니, 점장님께 예쁨을 받아 마감 위주의 일을 도맡았고 시급도 조금 인상받았다. 믿을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점이 기분 좋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 결국 내가 원하던 서울대 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동안 조금씩 모아왔던 알바비로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부모님은 무척 행복해하셨다. 집안의 경사인데다가 국립대를 갔으니 등록금도 많이 줄여줬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결국 마지막에 성공 가도를 달려서 2달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보내다가, 22살 3월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통학시간이 큰 걸림돌이었다. 집이 고양시 쪽이었는데, 그곳에서 내려오는 데 한참이나 걸렸고, 전철에서 내려서도 꽤 걸어야 하는 거리에 놀랐다. 학교가 워낙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부딪히니 힘들었다. 통학시간을 알뜰하게 아껴보려고 전철에 앉아서 갈 수 있는 날에는 노트북을 펴서 과제를 하거나 행정학과 공부를 꾸준히 했다.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공부하며 맞이한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다.
거기서 본 아이들은 대부분 평범해 보였다. 태반은 때 묻지 않은, 성실하고 밝은 아이들이었다. 나는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철이 들어버려서 그런지 술자리가 재미없었다.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고, 술값으로 나가는 돈도 피같이 아까웠다. 결국 혼자 지내기를 택했다. 22살의 술맛은 꽤 달콤했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사치였다. 그래서 훗날 시간이 지나 다시 마실 기회가 생기기를 바랐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보이는 선배들과 동기들은 반짝였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신입생 환영회 도중에 나왔다. 담배 냄새가 가득한 골목길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구토가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있다가 결국 토했다. 술이 참으로 좋았다. 그 달달하고 알싸한 향이 고독을 씹을 때만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날부터 나는 집에서 술을 조금씩 마시며 잠드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5월 축제날이 되었다. 날이 좋아지자 동기들은 수업을 땡땡이치고 교내 잔디광장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놀았다. 나는 통학으로 지쳐서 눈이 울퉁불퉁 붓고 있었다. 결국 2학기에는 자취를 결심했다.약해지고 있는 마음과 몸의 정기가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 당시에는 운동도 하지 않았고 제대로된 음식을 챙겨 먹지도 않았다. 툭하면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으로만 먹고 살았다. 그랬더니 배는 불뚝하게 나오고 팔다리는 얇았으며 무엇보다 기력이 달려 힘내기가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좋지 않았다. 동기들 중 몇몇은 나를 "화석"이라 부르며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외로웠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성적을 확인하니 나는 해냈다. 수석이었다. 노력 끝에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22살의 나는 공황장애를 얻었다. 학교를 무단결석하며 집에만 머물렀다. 결국 몇몇 동기가 나를 찾아와 이유를 물었다. 그들에게 털어놓자 모두 위로해 주었다. 그들은 나에 대한 오해가 많았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이상하게 다 털어놓으면서 나의 인생사가 괴로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일찍 철들게 된 계기가 있었음을 알려줬다. 동기들도 나만큼은 힘든 시기를 보내지 않았지만 각자의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나만 아플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소주 없이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를 보러와준 동기들과 술을 마시면서 도원결의를 맺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하며 나는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22살,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