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같은 소설: 일기장에게
일기장에게
중학교 2학년이야. 다들 기피하는 나이라고 하지. 사람들은 나를 보고 한없이 웃는다고 놀리기도 하고, 또 화를 낸다고 해서 나를 기피하기도 해. 그런 나에게도 작은 꽃 하나가 찾아왔어. 사실 그게 꽃인지도 모르고 들어왔을지 몰라. 내 마음에 작은 솜털 같은 사랑이 내려앉은 거지. 그의 얼굴만 보면 설레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고, 오직 달리기만 가능해. 나, 첫사랑을 시작하게 된 걸까?
2010이야. 엄마랑 드라마를 보고 있었지. 둘이서 알콩달콩 보다가 키스신이 나오자 엄마가 헛기침하며 채널을 돌리던 기억이 나. 그땐 사랑이 기피해야 할 대상처럼 느껴졌고, 친구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 친구들이랑 코엑스 가서 스티커 사진 찍고 놀다가 학원 시간 놓쳐서 혼나던 적도 많았지.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꽃을 발견했어.학원에서 우연히 재회한 친구였어. 신기하게도 그 친구와는 5살 때부터 인연이 있었어. 같은 유치원에 다니며 7살까지 같은 반이었고, 엄마들끼리 친해서 서로의 안부 정도는 아는 사이였지. 그땐 딱히 친하진 않았어.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다가 우연히 학원에서 다시 만나게 됐는데,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조각같이 클 수 있구나 싶었어. 그의 코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구릿빛 피부에 180cm 정도 되는 키. 그리고 무엇보다 도톰한 입술이 딱 내 스타일이었지. 그 이후로 그를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어.
그 학원은 일주일에 한 번 가서 3시간 정도 수업을 듣는 곳이었어. 그런데 그를 만날 때마다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 말도 걸어보고 싶고, 어떻게든 친해져서 내 절친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학원을 다녔던 것 같아. 그때 배웠던 산문시니 고전시가니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거기서 공부하라고 돈 보내준 엄마한테 미안할 정도로, 그를 사모했지. 그는 내게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었어. 그 꽃을 내 방에 꺾어다 놓고 하루 종일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어.
"00아, 너 전화번호 뭐야?"
한 번도 대화한 적 없는 애가 갑자기 전화번호를 묻다니!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어. 내가 썸을 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점점 스며들었던 것 같아. 그 즈음 그는 페이스북에서 나에게 친구 요청을 했는데, 그때 받은 알림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려. 그냥 너무 좋았어. 나는 그와 이미 사귀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당시에 나는 교정기를 끼고 여드름도 많은 소녀였고, 그는 너무나 완벽한 피부와 훤칠한 키를 가진 친구였으니까. 나에게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페이스북 친구 요청과 전화번호라니! 너무 놀라서 3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니까 그와의 연락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어. 이제는 학원에서 얼굴 보면 그냥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했지만 그는 나를 이전처럼 대해주지 않았어.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지고 슬퍼서 학업에도 집중할 수 없던 시기였지. 내 모든 생각은 그로 시작해서 그로 끝났으니까.
결국 첫사랑의 꽃은 시들어 버렸어. 그는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고,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지. 학원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그는 눈조차 피하더라. 그때 모든 노래가 우울하게 들렸고, 그 감정으로 중학교 2학년의 첫사랑을 마무리하게 되었어.
중학교 2학년의 첫사랑은 달콤하기도 했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어. 그래서 숨쉬기조차 가빴어. 그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서 온갖 티를 내며 지냈으니까. 끝내 그는 내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주지 않았어.
사랑이 무모했던 걸까. 이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나에게 고백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마음에 두진 않았어. 그가 아니었기에 관심도 안 갔거든. 오늘 일기를 쓰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들의 마음을 소중히 대하지 않은 내 모습이 떠올라.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받을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잘못도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그가 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다시 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