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소한 희망으로부터 시작하면서
1.
새해가 왔다. 2025년. 생각보다 2024년에 아픈 일들이 수두룩 빽빽했던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나는 특이하게도 올해가 되자마자 신년 운세를 보러 갔다. 보통은 신년 운세 따위 믿지 않고 내가 해내는 일들을 위주로 해쳐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해를 왁자지껄하게 보내지 않았고, 카운트다운 따위도 없었다. 죽어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 애도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삶을 곪아터지도록 아끼게 되었다.
오징어 게임이 나와서 하나하나 죽어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볼 때 느꼈던 찌릿함이 이제는 무감각으로 돌아갔을 때, 인간이 얼마나 유약한지를 느끼게 된 계기라 할까? 이번 12월을 돌이키면 그렇다. 삶이 무상한 동시에 소중하다. 내 삶만큼은 아끼면서 살고 싶어서 포근한 계란말이처럼 잘 굴려서 생산적인 계란이 되고 싶다.
그래서 신년 운세는 어떻냐고 묻는다면... 좋지 않았다. 내가 워낙 사주팔자가 좋게 타고나 돈 걱정, 인생 걱정, 인복 걱정 없이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훗날 2년 뒤에 일어날 것이라는 말에 낙담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물어본 가장 근본적인 질문.
“올해 저는 사고로 죽는 일은 없나요? 아프거나 죽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간신히 입을 떼고 물었더니, 점쟁이가 하는 말,
“너는 95세까지 운이 타고났으니 걱정하지 말고 살거라.”
하며 끝나버린 20분의 8만 원. 거액의 돈이 후두둑 털어져 나가고, 나는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돈을 낭비하고 말았다고 자책했다.
그래서 나는 내 30*30 위시리스트를 다시 살펴보았다. 겹치는 내용들을 삭제하고 다시 매일매일 실행할 수 있는 작은 무언가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쓴 것들은 ‘일주일에 한 번 고양이 패드 정리하기’, ‘물고기 환수하기’, ‘운동하기 및 양재천 1시간 걷기’ 등 활동적이고도 생산적인 일들로 가득 적어놓았다. 작년에 누워서 지냈던 날을 회고하면서 내가 이상적으로만 살지는 않았다는 것. 내가 거창하게 작가가 되겠다고 말은 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살 순 없다. 이렇게 하다가 죽을 수 없다.
다시 나는 만트라 계획을 보고 어떤 식으로 바꾸고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고민했다. 결국, 나의 활동성과 몸무게 그리고 어쩌면 작은 행복을 찾아가기 위한 가벼운 발걸음들로 계획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활기가 돋고, 나는 날개가 펴지듯 개운하게 기지개를 폈다. 그렇게 오늘도 감기에 걸려 누워 있었지만, 일어나자마자 양재천을 걸어나와서 눈을 뽀드득 밟으며 걸었다. 걷는 발판 위에 내 숨결이 가득 담겼다. 내 생산성으로 밝게 빛이 나기를 바라면서.
2.
작년에 우리 할머니께서 다치셨다. 할머니께서 약간 치매기가 있으신데, 혼자 밖을 돌아다니시다가 길을 잃고 넘어지신 것이었다. 길을 잃으시고 3개월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하셨다. 더운 여름에 그렇게 돌아가실 순 없었다. 허무하게 넘어져서 하늘이 거꾸로 솟아 있던 날. 그렇게 할머니께서는 3번의 수술과 계속되는 치료로 인공 관절과 철심을 박으면서 겨우 일어나셨다.
겨우 일어나시지만, 이제는 마룻바닥을 걸을 때마다 감격한다. 우리는 할머니께서 이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든 조치를 다 해놨다. 만일을 대비해 도우미가 필요할까 봐 24시간 대기해주는 요양 아주머니도 계시고, 이제는 나도 자주 찾아뵈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기억력 회복에도 도움을 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조금씩 좋아지고 계신다. 나는 우리 할머니께서 내가 손주를 낳기 전까지는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최근에 조카들이 놀러 왔는데, 1살, 2살 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지자 너무 좋아하셔서 나도 얼른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말이다.)
할머니께 효도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보인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 한들 내 아이가 결국 나의 삶을 이어 살아줄 테니까. 그때는 죽어도 미련이 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