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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에밀리

by 후드 입은 코끼리

에밀리는 좋은 시절이 없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밀리는 좋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강아지까지,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다. 하지만 워낙 강압적이고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주의의 집안이었다. 옷도 단정하게 입고 교회를 다녀야 했으며(물론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지만),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엄마는 극도로 싫어했다.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다이어트 식단과 혹독한 운동으로 몸매 관리를 해야 했다. 에밀리의 엄마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을 무척이나 신경 쓰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에밀리의 신발이었다. 에밀리가 조금이라도 뛰어놀아서 진흙을 밟고 오는 날은 저녁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인 날도 있었으니,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던 날에는 그래도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그 정도로 칼 같은 집안이었다.


에밀리는 그런 집에서 살면서 속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이 이 집에 속해 있는 이유는 그나마 핏줄이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천륜을 끊고 살고 싶어 했다. 그런 가운데 학교는 에밀리에게 유일한 휴식처이자 도피처였다. 에밀리는 잭슨과 가장 친하게 지냈고, 그다음으로는 에어와 가장 편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 나날도 갑작스러운 학교 총기 난사 사고로 인해 변하고 말았다. 에밀리는 아이들의 시체를 본 것뿐만 아니라, 총을 든 사람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며 죽이려는 상황까지 경험했다. 운이 좋게도 총구를 들이밀던 사람은 그 사이에 머리에 총알을 맞고 사망했다. 에밀리는 3명의 학급 동료의 죽음과 가해자의 잔인한 죽음을 모두 목격하고 말았다. 피가 에밀리의 하얀 드레스에 붉게 물들었다. 그 피는 자신의 피가 아니라 학급 친구들의 피였다. 피가 너무 넘쳐서 검게 보이는 효과까지 느낄 수 있었다. 에밀리는 자신의 손을 볼 때마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 피는 어디서 나한테 더럽게 튄 것일까?"
아이들의 숨은 금방 멎었다. 그렇게 치졸하게 인생이 짧고도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는 결국 아이들의 죽음 사이에서 자신의 영혼도 죽어버렸다.

영혼이 죽자, 에밀리는 엄마가 아무리 자신을 학대하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도 예전의 에밀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에밀리는 씻지도 않았고 냄새 나는 상태로 학교를 다녔다. 아이들은 에밀리의 기이한 행동을 이해해 주었다. 그러자 에밀리는 더 화가 났다.


"너희도 죽을 수 있었던 상황이고, 나만 이렇게 당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어. 다 죽을 수 있었다고!"
에밀리는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 막말을 쏟아부었다. 아이들은 그 심정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워낙 천진난만한 데다 몽상가들이 많아서인지 에밀리의 현실적인 조언들이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에밀리는 그래서 점점 더 미쳐갔다. 머리카락에 비듬이 가득 꼬여도 아이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학교를 다니자, 엄마는 강제로 에밀리를 욕탕에 넣어 씻겼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알몸을 보이게 된 에밀리는 수치감과 모멸감을 한꺼번에 느끼며 화장실에 있는 거울을 깨뜨리고 그 자리에서 자해를 했다.


"언제나 묻어 있는 이 피가 진짜로 손독에 올라 쏟아지기를 바랐다."
에밀리의 행동에 엄마는 하소연할 곳을 찾았고, 결국 아이를 홈스쿨링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에서도 에밀리가 방황하고 있었기에, 학교 측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유감을 표하며 자퇴 처리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에밀리는 이제 엄마와 함께 집 밖을 오가며 살게 되었다. 학교라는 도피처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집도 편하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숨이 턱턱 막혀 가슴 통증을 느끼곤 했다. 에밀리는 그나마 엄마와 마트에 가거나 산책을 나갈 때만 잠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에밀리는 공원에서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아이들과 모래성을 만들거나 미끄럼틀에서 놀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왜 언니는 학교에 안 가요?"라고 물으면, 에밀리는 아이에게 따귀를 때렸다. 한번은 강하게 때려서 아이의 얼굴이 비대칭으로 붓는 바람에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후로 에밀리에게는 더 이상의 자유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에밀리는 월마트를 엄마와 가는 도중에 에어를 발견했다. 에어는 그 당시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숨어서 도망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에어의 눈에는 눈치가 가득했다. 누가 봐도 에어는 이곳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덤불 속으로 쏙 숨어들었다. 에밀리는 반가운 마음에 에어를 불렀지만, 엄마는 에어가 있을 리 없다며, 에밀리가 이제 환각을 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엄마는 에밀리를 강제로 차 안에 가두었다. 마트에 들어가지도 못한 에밀리는 작은 창문 사이로 통하는 공기로만 숨을 쉬고 있었다. 다행히 그날은 가을이었다. 선선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더위로 고통받지는 않았다.

에밀리는 에어가 좋았다. 하지만 에어의 탈출이 너무 부러웠다. 자신처럼 이상하고 기이한 행동을 해도 제지받지 않는 것에 대해 혐오감이 불쑥 들었다.
"왜 나만 이렇게 태어나서 못나게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에밀리는 그날 이후 자해와 끊임없는 고함을 밤마다 질렀다. 결국 에밀리는 오스틴 외곽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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