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는 것이 뭐길래 그렇게 집착을 할까? 나는 뭐 같이 생겨가지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 4시 반에 내 얼굴을 갉아먹으며 꾸며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니까 빛이 났고 먹지 않으니까 아름다워졌다.
모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상하게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수많은 모델링 팩과 지방흡입으로 메우지 않았을까? 혹은 며칠의 간헐적 단식, 그러다가 심해져 며칠의 단식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작은 똥배도 허용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메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결국에는 눈에 손 대지 않은 학생 하나 없고 여드름 압출 안해본 아기들 없다. 이제는 연예인처럼 보이기 위해 앞트임 트릭의 화장술도 발전까지 했는데 뭣하러 그렇게까지 살아야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예전 클레오파트라의 노력, 밀로의 비너스의 아름다움, 모든 황금비율들이 나타나서 지금까지 다 미적으로 우리가 디자인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다 디자인이라니. 모든 것은 디자인이고 아름다움으로 칠해져 있는 세상임을 인지할 수 있을 때 화장술을 내려놓게 된다.
내 생얼에 대한 실망감을 가득 안 긴 채, 다시 거울을 보고 놀란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내 얼굴에는 없다. 모든 사람들도 다 그렇게 느낄 것이다. 디자인 없는 내 얼굴. "내 얼굴이 이렇게 허망하게 생겼구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전의 힘이 강해서인지 내 얼굴에는 엄마와 아빠가 그려진다. 그걸 버릴 수가 없다. 그러면 다시 내가 원하는 것은 우성학적인 유전자 종자들의 집합체. 그것으로 아름답게 기획해서 태어났더라면 돈방석에 앉아 있을텐데. 마치 옛 고전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오른다.
우성학적으로 우리는 결국 실망하게 된다. 내 개성에 미쳐서 그걸 다 뜯어 고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걸 강남미인이 되는 순간 만족하다가도 아이러니하게 자신을 잃어서 속상해지기 마련. 그럼 난 무엇인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생얼에다가 수박되고 싶어서 아이라이너로 얼굴을 칠해보고 그리고 다시 피부가 틀어져서 울쎼라를 맞아야하는 건가. 그러다보면 이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대다가 결국 지방흡입과 성형수술까지 들어내껴야만 내가 만족하는건가. 아니면...... 내 개성이라는 더러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알아야하는가. 실망 그 자체로 살아가기? 아니면 개성 없이 살아가기. 둘 중 하나 양자택일의 삶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단순히 다 버리고 엄마아빠의 유전자를 다시 뿌리내려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며 후손으로 내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