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행운을 가져다주는 세계적인 시스템. 누군가에게 큰 부를 몰빵해주는 시스템. 그 시스템을 매일 나에게 수혜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토요일 저녁을 신경질적으로 보낸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신경질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내게 로또라는 큰돈이 수중에 들어온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if가 시작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게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운다. 예를 들어, 주식과 투자의 삶으로 목돈을 만들고 작은 집을 사서 더 이상 집 걱정하지 않을 세상이 올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된다. 사실 로또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기부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기부성을 잊고 자신에게 올 99%의 돈으로 사치를 부릴 생각에 신이 난다.
현실적으로 지금 시대를 반영해 본다면, 경제가 죽어서 사치를 부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어렵다. 그러나 로또가 당첨되면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평생 일해서 벌 수 있는 돈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로또의 부가 높다.
우리 집의 경우, 아버지는 매주 로또를 사신다. 로또집을 군데군데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사장님 앞에 다가가 현금 5천 원을 건넨다. 자동으로든 수동으로든 한 번의 도전. 그 도전을 10년 이상 꾸준히 해오셨고, 낙담을 당하면서도 이번 주에도 사셨다. 항상 하시는 이야기가 웃프다.
"결국 너는 행복할 거야. 그 이유는 이번 주에 될 거야."
그렇게 건네는 인삿말. 나는 그 인삿말에 담긴 알맹이가 텅 비어 듣기 거북할 때도 많다.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 또한 그런 인삿말이나 한탄하는 식의 문장을 듣다가 한숨을 푹 쉬신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음 편하게 카드값을 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신다.
언젠가부터는 카드값 연체가 두렵다. 그렇게 나도 성인이 된 것 같다. 돈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쓰는 데만 집중된 지 오래다.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5천 원을 내고도 나는 그런 생산성을 내고 있는 것인가? 내 몸은 과연 생산적인가?
만약에 로또에 당첨되면 나는 빈둥거려도 되는 생산성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나에게 주어지는 거대한 산과 같은 부는 그런 목적성을 가진다. 가만히 숨을 쉬고 심장만 뛰어도 "너는 충분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을 뿐인 것 같다.
아버지는 나와 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계신 듯하다. 가장이기에 가족을 먹여 살리고 가족의 부담을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로또 당첨은 자신의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대한 기회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다. 나처럼 빈둥거리면서도 실용적인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 돈이 생기면 꼭 줄 것이라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을 위한 희생에서 나오는 돈의 가치가 아버지의 가슴속에 차올라 있는 것 같다.
어머니가 가끔 홈쇼핑에서 옷을 보고 갖고 싶어 하지만, 싸구려 티셔츠를 입기 싫어하신다. 그런 사소한 투덜거림을 아버지는 위풍당당하게 돈을 건네면서, 호화로운 명품관에서 쇼핑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는 아픈 아토피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 줄 마법의 돈이기도 하다. 8년 이상 앓아온 아토피 치료에 한 달에 40만 원 이상을 쓰고 있는데도 온전히 낫지 않으니까. 1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들여서라도 대학병원의 치료제를 사용한다면, 나는 더 이상 이런 면역력을 가지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 돈이 나에게 필요하다. 아버지의 자존심보다 희생이 느껴지는 로또다.
로또는 어느 누군가의 방문을 언제나 두드린다. 그렇게 선물같이 찾아와 갑작스럽게 맞이한다. 그런 맞이를 준비된 사람에게는 체계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순식간에 잃는 것도 하루아침이면 사라진다.
우리 집의 경우도 하루아침에 사라질까? 당첨되지 않아서, 그 흥분과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실수도 저지르면서 계획된 소비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나에게도 언젠가는, 100세까지 사는 이 시대에, 52주의 1년이 100번 돌아오는 시기 동안 한 번쯤은 로또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추신. 절대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터이니, 나에게 현명한 소비가 무엇인지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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