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진 카페에서 할일하기

by 후드 입은 코끼리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아이패드를 들고 나가 구석진 카페로 간다고 했다. 거기서 자신의 창작물들이 태어난다고 말했다. 사실 사람이라면 집에서 일하기는 힘들다. 헝클어져 있는 이불과 바로 옆에 있는 책상은 언제나 침대와 한몸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 공간을 탈출해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카페로 나서게 된다.

그놈의 커피 가격이 인상되었다고 하면, 내 활력은 어디서 얻지 싶다. 사람은 분위기를 탄다. 항상 분위기와 환경이 중요하다. 분위기와 환경에 놓이면 사람은 얌전하게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게 된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면서 원하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내 동생도 꼭 작업을 하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커피 냄새는 사람의 두뇌를 자극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창의적이고도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카페가 존재하는가 보다. 민족성 자체가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구석진 카페에 가면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들이 재미있게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심각한 얼굴로 펜으로 글을 끄적이기도 하고, 컴퓨터로 영상을 시청하기도 한다. 재미 삼아 나와서 딴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딴짓은 누군가의 눈초리가 느껴지면 바로 탭을 바꿔 자신의 할 일로 다시 넘어간다. 나는 그런 점에서 사람이 재미있다.


나는 봉준호 감독은 아니지만, 그의 시나리오 작업 방식이 꽤 마음에 든다. 커피 향을 맡다 보면 어느새 우주에서 둥둥 떠다니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아쿠아리움에 앉아 멍하니 물을 쳐다보면서 물고기를 바라보는 제3자가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과 고민과 갈등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노션을 열어 마인드맵을 하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다가 결국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 나도 해냈다. 그렇게 뿌듯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진행한다.일을 하다 보면 골머리가 썩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나갔을 때의 벅찬 가슴은 당당하게 올라간다.


매주 나가던 글쓰기 모임이 있다. 목요일마다 사람을 만나 글 한 편을 작성하는 습관 만들기 모임이다. 그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직장도 다르고 개성도 뚜렷하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향은 각기 취향대로 다르다. 그들의 웃음과 울음 뒤에는 무엇이 서 있을지 궁금한 적도 많다. 그렇게 궁금증을 품고 꾸준히 참여하다가 2025년이 되자마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글과 멀어졌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나 이 정도 써" 하고 자랑하는 수법으로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한예종을 졸업한 사람들의 수필과 소설을 읽다 보니 내 자신이 얼마나 레벨이 낮은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때 느낀 좌절감으로 인해 글과 멀어졌다.

하루 종일 누워서 영화도 보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잠만 잤다. 잠이라는 곳은 신비로웠다. 그곳에서는 자유를 느끼는 동시에 억압적이었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전개가 가득했지만, 그래도 소설들이 펼쳐져 읽고 쓰기가 편했다. 일부러 잠에 빠졌다. 그것이 내가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3월이 되자, 나는 두 달간 밀린 죄책감을 털고자 나왔다. 그 죄책감이 오늘은 과연 어떻게 씻겨 내려갈까? 나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보고, 영상을 편집하면서 생산적으로 살긴 했다. 그래도 글에서 오는 창의적이고 단조로운 색감은 눈밑을 자극해 아름답게 비친다.

오늘 구석진 카페에서 사람들의 눈초리 감시를 받으며 쓰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또가 우리집을 똑똑 두드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