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발치라니.......
몇 달전부터 나는 사랑니뿌리가 신경을 건드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심란해서 향수를 샀다. 그 향수를 볼 때 마다 난 "사랑니를 언제 뽑으러 갈 지 정해야하는데" 하면서 푸념을 했다. 그렇지만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다. 나에게 옆으로 누운 반듯한 사랑니가 있다는 사실이.
그런데 하필이면 신경을 건드려서 발치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큰 맘을 먹어야만 했다. 왼쪽에서 느껴지는 속속한 어금니 옆 주머니는 간지럽피는 날이 잦아졌고 결국 사랑니 발치날을 잡았다. 10월 16일 수요일이었다.
유명병원에서 발치를 하면 그나마 낫다고 해서 찾아갔다. 강남역에 있는 한 구석진 병원이었다. 소문나서 그런지 사람들은 꽤나 오고가고 했다. 그리고 내 차례는 곧 왔다. 나는 마취를 당할 때, 기나긴 바늘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삐 삐 삐 삐. 4번이상의 삐 소리가 들리더니 곧 마취가 되었다. 감각이 있던 곳에서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입술을 눌러보아도 통통하게 올라온 기분만 들고 충격은 없었다. 그렇게 기다렸다. 마취가 온몸에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 감각이 어느새 올라왔다. 왼쪽즈음으로 해서 혀도 두꺼워졌다. 침이 계속해서 고이는데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습관적으로 먹어줘야만 했다. 계속해서 내 사진을 보면서 다른 손님들의 발치 소리를 들어야했다. 발치가 상당히 따가울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계 소리들이 장난 아니게 흘러나왔다.
내 이름이 불리자 내 의자는 뒤로 재껴졌다. 이제 초록색 망토도 나왔다. 그걸 씌우면 내 얼굴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 입만 열면 되는 차례 어느새 의사는 콕콕 내 왼쪽으로 향해 찔렀는데 이상하게 아픈 곳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취가 들어갔다. 3번째 마취였다. 이젠 더 이상 마취하고 싶지 않았다. 부풀어오르는 목과 볼. 나는 이 곳에서 생존해서 집에 들어가서 글쓰기 힘들겠구나 싶었다.
몇분이 지났을까. 이젠 공포로 시간이 다가온다. 아까까지는 긴장이 안되었는데 하도 기다리다보니까 몸에 힘이 하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다리니까 다시 오는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은 이제 바로 실행했다.
나의 이는 뽑을 때 자체는 아프지 않았다. 느낌도 무감각한데다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사람들이 이 치과에 와서 사랑니를 차례대로 와서 뽑아가는지 알겠다. 완성되었다며 나에게 보여준 이는 4등분이 된 채로 고이 펼쳐져서 전사했다.
나는 그 이를 갖고 싶어하는 요상한 애인이 있기 때문에 그 이를 가져가겠다고 서명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2시간동안은 거즈를 앙물고 집으로 빠르게 향해나갔다
사랑니를 보니까 사랑할 때 즈음에 난다고 해서 사랑니라고 부른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라면 이에게 예쁜 명칭으로 명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위스덤 투스라고해서 지혜가 쌓일 때 즈음에 생기는 이라고 거기도 이쁘게 명명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사랑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나보다.
어차피 뿌리가 깊어서 뽑아야하기만 하는 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사랑니가 나는 사람들을 놀리고 다녔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 두려움과 아픔이 나한테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데 사람 일은 이렇게 모르는 일이다. 나한테도 모든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교훈도 다시 얻었다.
다음 번에 하나 더 뽑아야하는데 이제 그 아픔을 알아서 어떻게 뽑아야할지 더더욱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