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환수는 누군가에게는 행복이다.

나에게는 비록 귀찮음이지만

by 후드 입은 코끼리

일주일에 3번 정도 하면 좋다는 물고기 환수는 정말 귀찮다. 나에게는 물을 빼고 또 새로운 물 온도를 맞춘 채로 염소제거제 한 스푼 넣어야 하는 과정이 너무나 귀찮다. 깨끗해진다 해더라도 이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는 않는다. 물고기 환수는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한테는 마치 강아지 산책과 같은 행위였다. 그래서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물고기를 가지게 된 계기를 물어본다면 원래 할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지루함에 끝에 서있는 할머니꼐 드리는 선물이었고 그때는 책임감을 가지고 물고기 환수를 했다. 그렇지만 할머니께서 편찮으신 이후 물고기가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계륵을 처음에는 할머니집에 매일 가서 먹이를 주기 위해 다녔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집이 텅텅 비어있어서 집을 돌볼 겸 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도록 할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 한편으로 귀찮음도 있었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그래도 물고기 환수를 하고 물고기 밥을 주는 일을 해왔다. 나는 물고기의 아가미가 펄럭거리면서 밥을 집어먹는 행위가 웃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라도 생명이 커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명을 위해서 노력해 왔다.


어느 날 애인은 나에게 그 귀찮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겠다고 자신이 나서서 물고기 어항을 우리 집에 갖다 줬다. 그날 정말 힘들게 옮겼다. 차의 바퀴몰이는 물살이 조금이라도 흔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안전하게 물고기를 대려다 놔준 것만으로 도 다행이었다. 엄마와 나는 극진히 물고기를 맞이했다. 물고기들은 난리법석을 떨면서 헤엄치고 있었다. 애인은 그 뒤로 물고기 케어를 위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애인을 만난다. 그는 만나자마자 하는 소리, 혹은 전화로 가끔 하는 말은 "오늘 환수했어?"였다. "아니 왜?"라고 말하면 이제 환수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몇 번이고 들었던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환수는 자주 할수록 물고기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자주 해줘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맞는 말이다. 챗지피티 돌려봐도 맞는 말이라고 해서 나온다. 그래도 진실로 인해서 나의 귀찮음이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에 한 번은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애인이 집에 놀러 오면 물고기 환수부터 하러 중장비를 꺼낸다. 그는 환수의 신이 되었다. 물의 펌프질부터 개구리밥 없애는 일 등을 알뜰하게 해낸다. 환수를 하면 긁게로 유리벽면을 살살 벽면을 타고 내려간다. 그것을 4면 모두 하다 보면 새우들이 내려앉아서 묶은 이끼를 뜯어먹는다. 그들의 새로운 영양분이다.


새우들이 한층 식사를 끝내면 이젠 물고기 차례로 돌아간다. 맑아 보이는 물을 바닥밑에서 펌프 하면 흙에서 나오는 물고기똥과 가루들이 스멸스멸 올라온다. 물바가지에 불순물이 가득 차면 이제 버리러 나가야 한다.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가. 그 물들도 흔들리고 나 또한 흔들린다. 좌우로 대칭이 맞지 않아서 균형 잡기 어렵다. 그렇게 몇 걸음을 천천히 걷다 보면 개수대 앞에 서서 물을 따라 버린다. 새 물을 채우고 손을 담가본다. 25도 정도 느껴지는 미지근한 물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감각이 덜한 사람인지라 이것도 애인의 손을 빌려 또 물어본다. 애인은 이 정도면 적당할 것이라며 말해주었고 우리는 염소제거제를 넣고 휙 물을 저어준다.


물을 푹 수조에 넣으면 모래가 깊게 파지게 된다면서 애인은 섬세하게 펌프질로 물을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또한 귀찮다고 나는 말린다. 그냥 하자. 제발.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물을 푹 붓는다. 그러면 애인은 역시 자기 말이 맞다고 다시 돌 정리를 시작한다.


나는 물었다. 왜 이 귀찮은 것을 하냐고.


"생태계가 우리 집에 생기는 느낌이 좋아. 그리고 무엇보다 깨끗해지잖아"


그의 말은 나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생태계가 우리 집에 생성된다는 말이 무척이나 낭만적이게 느껴졌다. 물고기가 수초 사이에 숨어서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기도 하고 새우가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녹초를 하나 둘 찢어먹는다. 그러다 보면 선순환되면서 물고기도 잘 살고 새우도 잘 살고 다 행복하게 산다. 그걸 멍하게 쳐다보면 인어공주가 된 기분도 든다. 그 기분을 느끼고자 나는 물고기 관리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애인은 흐뭇하게 웃는다. 자신의 집에도 꼭 이런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기도 한다. 나중에 훗날 같은 집에 살 때도 그에게 행복이 되는 일을. 집에다가 넣어주고 싶다. 나에게는 글쓰기인 것처럼 그에게는 이 수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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