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내일이 심사의 날

by 후드 입은 코끼리

내 일정이 꼬일 대로 꼬였다. 삶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애를 썼으나 쉽사리 인정되지 않는 부문이다. 나는 우울하고 싶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원래 타고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이다. 좋게 포장하자면 태어나고 보니까 나는 환경대로 성격대로 생겨먹은 대로 우울했다. 우울의 감정이 휘몰아치면 생각보다 안 좋은 현상들이 나타난다. 특히나 눈물이 나야 하는 상황에서 공감을 하지 못하고 내 중심적인 사고로만 사람을 바라본다. 내 문제만 커 보이기 때문에 남의 문제는 종이쪼가리처럼 느껴진다. 그 종이들을 펼쳐보면 사실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말이지. 그럴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우울증 그 자체다.


그러니 누가 우울증 환자랑 같이 일하고 동고동락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사실 아무도 자진해서 그 사람을 돌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사람이 당연 내 자식이라면 하는 수 없이 막강한 우주의 법칙으로 이루어진 내리사랑으로 돌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피로 엮이지 않은 가족이라면 가능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주고 그 병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방법과 수단이 존재한다. 약물로 호르몬을 바꾸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고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세러피, 즉 상담세션을 받는 것도 일종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다양한 치료형태인 미술치료, 촉감놀이, 심리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해소시키고자 노력한다.


근데 그거 아는가? 사실 모두 우울증을 겪지는 않아도 한 번쯤은 인생에서 극도로 우울하는 시기가 온다. 그것이 오늘일 수도 있지만 내년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그럴 수도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너는 안 그럴 거 같은가? 너도 그럴 수도 있을 가능성 80프로는 있다. 현대인이라면


현대인이 우울증을 갖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모든 사회가 연결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보다 우리는 고생길이 훤하다. 사회가 부담 주는 막강한 책임감과 그 과시의 사회, 자본주의의 끝판왕시 대인만큼 짊어질 고난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인스타그램만 봐도 그렇다. 좋아하는 연예인 보다 보면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그 좋아하는 연예인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의 혐오가 따라온다. 혐오가 커지면 그 동경은 결국에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그 사랑을 먹고 자라는데 그 사랑이 알고 보니 자기중심적인 사랑인 자존감에서 빼앗기는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지. 자존감도 높고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분별할 능력이 있겠지. 그러나 어린 청소년부터 청년의 경우는 사실 뇌가 발달 중이기에 그런 구별을 하기 어려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우리 어른들이(내가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의를 주고 대화를 꾸준히 나눌 필요가 있겠다.


내가 왜 제목을 "결국 내일은 심사의 날"이라고 적은 이유는.... 이런 우울증으로 인한 사람이 과연 우울증인지 아닌지 확인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 우울증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서, 휴직계를 제출한 상태다. 그런데 그 상태를 몇몇의 의료진과 함께 심사를 통해 나를 계속 회사의 소속원으로 남길지 말지를 본다. 나는 회사의 소속원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해 각종 서류를 증빙해서 제출했다. 과연 회사는 나를 환경적으로, 성격적으로, 생겨먹은 대로 생긴 우울증인지를 감별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과연 내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만성질환인 우울증을 확인하여 나를 주의를 기울여주는 어른처럼 다루어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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