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인연

노원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연, 끝이 날 예정인가 싶기도하고....

by 후드 입은 코끼리

평생을 서울의 남쪽 끄트머리에서 살았다. 부유하다기보다는 자리를 잘 잡았다고 해야 할까.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다 보니 양재 언저리는 내 집이 되었고, 도곡, 대치, 삼성 일대는 눈감고도 걸을 수 있는 마당이 되었다. 익숙함이란 얼마나 조용하게, 얼마나 깊게 스며드는지.

그런데 나이란 게 사람의 지도를 바꾼다.

첫 직장의 발령지는 노원이었다. 처음 듣는 그 이름은, 솔직히 말하면 낯설음보다 반감에 가까웠다. 수많은 구(區)를 꿰뚫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곳. 그곳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끝도 없이 솟은 아파트들과 낮게 웅크린 상가들이 나를 맞았다. 내가 배정된 동네에는 빌라가 특히 많았다. 누군가는 정겹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감이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불편했다.

남쪽에서 보이던 것들이 전부 지워진 기분이었다. 퇴근길은 고속도로를 15킬로미터씩 달려야 했고,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버티며 집에 도착하던 밤들. 그 절박한 귀가가 일상이 되었다.

정감 대신, 나는 열감(熱感)을 느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식히지 못하는 열기. 쉬운 서류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살은 뒤룩뒤룩 쪄갔으며, 열정은 어느 틈에 증발해버렸다. 아토피가 온몸으로 번졌다. 면역이 무너지는 동안, 나는 매일 눈물 어린 전투를 치렀다. 몸속에서는 카이사르의 대군 같은 무언가가 날뛰었고, 나는 그것을 물리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노원과의 인연은 어느 순간 악연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감사한 이들도 있었지만, 독한 사람들이 남긴 상처가 더 오래, 더 깊이 남았다. 장소와 사람이 함께 날카로워질 때, 몸은 그것을 가장 먼저 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했다. 그냥, 놓아버렸다.

그랬더니 이틀 만에 몸이 나았다.

어떤 땅은 내 땅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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