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쉽게나마 하늘을 바라볼 뿐
1.
나는 과연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원했던 작가의 꿈을 펼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전업 작가로 일하면서 세계를 뻗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쓴다기보다는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던 생각들을 어떻게 실타래로 풀어나갈지 고민을 많이 해왔다. 그리고 나의 글들을 풀어내기 위한 작은 루틴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이 온전히 글에만 있어야 한다. 책을 읽는 시간, 신문 읽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글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분과 상관없이 글은 일관적이게 나의 문체를 보여주며 글을 서걱서걱 반죽해야 한다. 그 반죽을 치대고 반복하다 보면 완벽한 파스타로 될 수 있다.
2.
나는 오늘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눈을 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그렇지만 일어나서부터 생각나는 글의 숙명은 글을 어떻게 해야만 비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한가득이다. 서서히 빛을 잃어서 나의 글이 무쓸모 해질까 봐 걱정이 되고 나의 수필이 충분히 아름답지 않아 독자들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글을 쓰면서 하나둘씩 어휘와 어법 그리고 읽기 쉬운지 등등의 혼자만의 평을 해내가며 써 내려간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글이 휘감기듯이 썼다. 그렇게 쓰다 보니 나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지만 멋은 없었다. 퇴고라는 반죽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맛을 봐야 하는 시기를 놓치고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글은 그렇게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글은 멋들어질 때 가장 맛있는 법인데, 그걸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왜 소설 한 편에 7년이 걸리는지 알았다. 그저 생각만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를 쏙쏙이 재료가 온전히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과정 숙성하는 과정을 걸쳐야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숙성과정을 모르는 채 글을 써왔던 것 같았다.
잠에 숙성되기만 했을 뿐. 나는 익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천 년 동안 같은 하늘아래에 있는 한낱의 인간임을 인정하며 어떠한 작가가 될지 고민이 되었다. 사회고발적인 작가? 낭만을 사랑하는 작가? 그냥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되는 작가? 자극적인 작가? 어떤 작가의 모습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작가가 작품 하나의 깊이를 가지고 푸르게 스케치를 한 다음에 채색을 해야 하는데 그걸 무지개로 색칠할 수 있는 능력의 작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습작한다.
오늘의 루틴을 그래서 적어보자. 나는 일어나서 엄마가 준 커피를 마셔본다. 아직 사랑니가 빠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왼쪽 볼은 시리기만 하다. 아프고 시린데 일어나서 책을 읽고 싶다. 어제 읽은 <구의 증명>을 읽고 낭만주의적인 사랑, 비극적인 사랑을 감탄하면서 또 그런 책을 굶주리게 된다. 밀리의 서재와 리디북스에서 계속해서 책을 찾아낸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서점에 가서 책을 몇 권씩 사서 읽고 또 읽을 것만 같다.
나는 책의 동산에서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젠 곧 책들로 파묻혀서 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오늘의 옷을 한번 골라본다. 애인이 사랑하는 배추 원피스를 입어본다. 이 옷은 대학교 때 산 옷으로, 입기만 하면 남들과 눈에 띄게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진 이름의 원피스이다. 이 원피스는 스트리트웨어랑 잘 어울리고 흰 양말에 초록 반스까지 신으면 딱 어울린다. 나는 오늘 그렇게 입고 나서서 하늘과 구름과 별들을 담아 올 생각이다. 세상의 사람 냄새를 맡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남자친구는 엄마에게 줄 빵과 나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소포장해서 오는 중이다. 달달하게 먹고 나면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의 향연이 아마 톡 쏘지 않을까? 그 간지럽히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면 배가 부를 것만 같지만 약속한 대로 먹으러 가자는 양장피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먹어야겠다. 그러고 그의 차에 올라타 계속해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사진을 기록하는 장치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의 웃음과 그의 대화 모두 담고 싶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나는 그와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감각적으로 느낄 생각이다. 그의 모든 사소함을 캐치하기 위해 눈을 바라보고 눈 속의 바다를 그리면서 그를 정성스럽게 어루어만질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툭하고 웃지 않을까? 밝고 해맑게 웃는 웃음 속에서 피는 여유가 아마 가장 완벽할 예정이다. 술도 없고 우리 둘로만 채워지는 공기로 말이다.
시간이 지났다. 그의 웃음과 그에 대한 내 글에 대한 비판, 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날씨가 화창하고도 아름다워서 햇빛을 주머니에 주워 담은 다음에 바닥에 흩뿌려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이 씩 웃으면서 햇빛을 잡으며 놀았다. 애인과 같이 양재천 길바닥을 쓸어보았다.
3.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한참 동안 밖에서 커피를 마셔주었다. 주차장에서 마시는 얼음 가득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찬 바람이 부들부들 추웠다. 그래도 입김 사이에 올라오는 따스한 말들로 대화가 가득 채워져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일주일간 못 본 사이의 연인. 연인으로서 사랑을 속삭이며 오늘을 즐겼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신기하게 느껴진 나의 사고. 나의 사고의 발생은 독특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감명받아 쓴 시, 그 자리에서 쓰게 된 시나리오 모두 공개하며 그에게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나의 평을 혹독하게 쓴소리를 내주는 동시에 나의 사고에 감탄했다. 나의 창의력을 글로 펼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좋다며 그에게 엄지 손가락을 걸면서 말했다. 그는 나의 사고도 사랑해 주었다. 사랑이 가득히 담아내준 그의 볼때기와 여운이 남는 손길. 나는 그의 사랑을 받아먹으며 오늘 토요일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