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정말 모든 이들에게 마법과 같은 공간이지 않을까? 자신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인 데다가 몽상가들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샤워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떠오르긴 하지만 자기 전에 오늘 하루를 감상하고 일기도 쓰고 잠을 설치면서 다양한 고민과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다. 침대에서는 너무 행복하게 숙면을 보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불편하게 불면증에 걸려 자책의 시간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거리를 안주 삼아 하루를 곱씹어보게 된다.
가정주부인 우리 엄마의 경우가 딱 그렇다. 잠자기 전에 티브이를 틀어놓고 잠에 들기를 기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딸인 나와 함께 대화하다 보면 하품이 나오는데, 그것이 가짜 하품일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다시 한번 엄마가 잠에 빠지기를 바란다.
해진 침대로 돌아가서 보니, 나는 잠을 짧게 짧게 자는 편인 것 같다. 너무나 사 차원적인 꿈을 꾸기도 해서 그 꿈을 기록하는 재미도 있다. 호러가 나오기도 하지만 판타지와 내 안의 트라우마들이 섞여서 하루의 영화필름으로 제작된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이불이 온데간데없다. 이불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식은땀을 채우기 위해 물을 찾게 된다.
물을 마시면서 나는 다시 잠을 들 수 있는 시각인지 확인한다. 새벽 3시다. 그래도 두어 시간은 남은 편이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한 번 열어본다. 책에는 낭만이 가득히 담겨있어서 오히려 잠에 깬다. 그렇게 뒤척이다 보면 잠에서 깬다. 이런 오늘도 이렇게 잠에서 깬다고? 하면서 시원찮은 하루를 불쾌하게 시작한다. 그래서 독서와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다시 침대 위로 기어올라간다.
기어올라가면 쌓여있는 머리카락과 나의 자국들이 너무나 많다. 얼굴에도 눌려있을 베개자국이 어떻게 있을지 감히 상상도 안된다. 찢긴 해적의 영광상처처럼 있을까 싶다. 나는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고자 chat gpt도 열어서 검색하고 신이 죽었다는 말에 완전히 공감하면서 오늘도 새벽 푸르스름한 아침을 보고 일어난다.
침대 속은 포근했다. 아기처럼 브리또를 해서 눕기도 했다. 그리고 잠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해진 침대에게 기대하긴 어렵다. 해져도 그래도 편안한 게 최고다. 해져도 가져가고 싶다. 신혼집에 새로운 가구를 들이기보다는 내 침대로 시작해서 책을 읽고 잠을 못 자고 싶다. 10년이나 같이한 나의 꿈과 키는 침대가 가지고 있다. 그 침대를 볼 때마다 나는 감격스럽다. 고맙다. 그리고 곧 떠나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 적잖이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