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는 어떤 모습의 작가가 되어야만 할까?
사색의 끝은 없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색의 끝을 지나서 먼 우주의 먼지를 가지고 다가와 별처럼 뿌리는 일 뿐이다. 그러다가 걸리는 그 수많은 수필들이 나에게 돌아와 꽃이 되는 일. 그것이 나의 소원이자 나의 소명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닻에 걸려 수천만 원의 돈걸이가 되어서 올라오는 날, 나는 어떤 자격으로 그 돈을 받고 무성하게 자라있을까?
나는 그렇게 글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굴뚝보다도 높다. 그렇게 한다면 영원한 사색의 꿈에서 나오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괴롭히던 회사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단잠 속에 자주 들어가서 내 안의 것들을 다시 끄집어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게 남겨져있다. 나는 입에만 풀칠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가난이라 했던가? 작가의 다른 말은? 그것도 참으로 맞다. 워낙에 글을 읽지 않는 세상에서, 문해력이 떨어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문학적 표현을 가르칠까 고민하다 보면 우리는 먼 기로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보여주는 수많은 편수의 영화.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울림으로 대체하면서 우리는 문학을 즐긴다.
나는 낭만적인 사람인지라, 잔인한 영화 및 킬링 타임으로만 만들어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의 소설적 문구들이 가득히 들어가 있는 영화라면 너무나도 좋아서 자지러진다. 그렇게 밤새도록 보게 된 영화 속에 내가 보이고 주인공이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악수하면서 만찬을 나누며 이야기를 밤새도록 또 나눈다.
나누다 나누다 보면 이젠 나눌 것 없을 정도로 찢긴 주머니와 이야기보따리. 이제는 일어서서 계산할 때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나의 사색도 무너지고 이제 현실로 돌아와 짧은 후기로 마친다. 그와의 시간은 완벽했으며 그와의 대화는 훌륭했고 이런 문학을 만들어줘서 감사했다는 인사와 함께 말이다.
나에게 그런 영화는 몇 없다. 현재로서는<퀸즈 갬빗>이 생각난다. 어린 소녀가 체스 챔피언이 되어가는 서사. 상실의 어머니와 고독한 고아원. 천재성을 들킬 수밖에 없는 구조와 목격되는 죽음 사이에 행진하는 체스 챔피언 엘리자베스 베넷. 그녀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개월에 걸쳐서 이야기를 한 결과 그녀의 성공은 그저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녀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이라며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사색은 또 끝이 없다.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를 다 보고 여운이 남는다면 밤에 나도 체스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인터넷 체스를 시작해본다. 그렇게 어려운 말들을 한눈에 여러 차례의 앞을 보고 수를 두는 그녀를 생각하며 하루를 마감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수면제 없이 나는 잠을 들지 못하는 법. 결국 기권하고 잠을 선택한다.
나는 오늘은 옛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감상하고 있다. 절반밖에 보지 않았지만 이 역시 나에게 큰 울림을 줄 것만 같다. 그래서 왜인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았는지도 알 것만 같다. 나는 오늘 이 영화를 마치면 포레스트 검프와의 만찬을 시작해야겠다.
그런 영화들을 보다 보면 나 역시 그런 헤드라인에 올릴만한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수억 달러의 투자가 들어가면서 내가 원하는 구조와 구도를 요청할 자격이나 될까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곧은 아니더라도 매우 훗날에 발생하더라도 고개를 조아리면서 나는 모든 캐릭터와 나의 사색을 담아내고 싶다. 한 명의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서 돈을 조금 받더라도, 인쇄비를 적게 받더라도 말이다.
나는 돈 많이 벌고 싶은 작가? 당연히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사색과 울림을 외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서 계속해서 매일 글을 작성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