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4. 2024

회사차림

소설: 흑백영화의 차가움



목구멍 속에 울리는 메아리가 외친다.
"안돼, 너는 할 수 없어"
그래서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 본다. 그렇게 서 있다 보니 미움을 사기 쉽다.
그래도 나는 살아야지 하면서 절대로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다 보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역시 사회생활은 어린 사람일수록 벌떡 일어나서 솔선수범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움직이지 않으니 참으로 기이한 분위기가 흐른다.
"00씨, 이거 한 번 들어줄 수 있나?"
그제서야 예전에 배웠던 데드리프트로 한번 들어보려고 한다. 응차, 그런데 역시 힘이 부족하다. 나는 분명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훨씬 수월하게 들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아니야 00씨한테 무거웠나 보지 뭐."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남정네 사원(동기)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곤 박스를 들어올린다. 그 무거운 물건들은 박스 안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 박스를 탕비실 쪽으로 옮기고 난 다음, 회사 사람들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가득히 느껴지자마자 나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아니 오늘 그래도 날씨가 좋지 않아요?"
"아 네 맞네요. 그러면 오늘 점심은 우리 뭐 먹나"
과장님이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랬더니 다들 짜장면이라 했다. 그 짜장면은 달콤하지만 너무 자주 먹는 음식인지라 물리기 일수인데 말이다. 그래도 계속해서 눈치는 오가다가 결국에는 짜장면 낙찰. 거기서 짬뽕은 먹어도 되고 계란볶음밥은 먹어도 되는데, 마파두부밥은 허용하지 않는 점심시간. 나같이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에게는 너무나 억지스러운 분위기에 짜증이 벌컥 올라온다.


"오늘은 회사 법인카드를 가지고 왔으니까 말이야. 오늘은 요리 하나 정도는 시켜서 나눠 먹자고."
과장님이 힘차게 카드를 내밀며 탕수육 중자를 하나 시켜주었다. 그래도 소자가 아닌 게 어디인가.
나는 그런 탕수육을 야금야금 먹었다. 달콤한 소스가 버무려진 그 탕수육은 진득하니 고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 탕수육을 베어 먹고 먹는 짜장면은 그래도 물리지 않아서 계속해서 입안에 기름진 국수를 넣어놓았다.
국수가 끝나자 육덕진 배가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그 배가 너무 꼴보기 싫어서 젊은데도 배가 나왔다는 사실을 가리고 싶어 청바지를 훌쩍 올렸다. 그러다가 옆에 주임님한테 들켰다. 주임님은 나의 배를 보고 모른 척했지만 그녀도 속으론 나를 비웃고 있을 게 뻔하다. 많이 먹는 주제에 물건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사원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나는 회사 안에 들어가 차가운 냉기의 자리로 앉았다. 그곳에 밀린 하얀색 종이 업무들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 역시 마르도록 불편했다. 그런 종이가 쌓일수록 나무에 베이는 내 손가락에 상처는 수없이도 많았다. 그렇게 올라가는 내 침 묻은 종이들. 그 더러운 종이에 짜장면 냄새가 베이는 듯했다.


일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발주도 들어오고 회계 보고서 제출할 것들까지 합하면 오늘 퇴근은 거의 9시다. 9시에 집 가기 싫다. 그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발악하지만 결국에는 끝내지 못할 것을 4시에 알아차렸다. 신입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더 일하라고 채찍질한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그저 엑셀에서 물놀이하듯이 풀어써야 하는 숫자놀이. 그것이 은근히 복잡하고도 번잡스럽다. 커피 한 모금 마시면서 써져 있는 동기 이름. 동기는 나보다 출중한 것이 뻔했다. 그는 계속해서 불리면서 칭찬 사례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그에게 들어오는 서류철들이 잔뜩 넘어져 왔다. 그러면 그도 역시 나처럼 한숨 쉬면서 읊조리는 욕설. "시발."


그래도 우리는 언제까지 이 회사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했다. 오늘은 그래도 9시 이전에는 가야지 주문처럼 외우다가 바깥에 흔들리는 서풍이 시리도록 아팠다.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데 단 한 명도 퇴근하지 않았다. 여자들의 얼굴에는 주름에 패인 분가루가 이젠 공기 중에 날아다녔다. 사람들의 암내가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끓는 트름도 삼키며 일하고 있었다.


"오늘은 나는 이만 하도록 하지. 여러분은 수고하도록 해."
팀장님이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그러자 말릴까 말까 하는 과장님. 과장님한테 꾸벅 인사하고 팀장님은 벅차서 이 자리를 나간다. 과장님은 그런 팀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쯧쯧거린다. 그의 혀 차는 소리가 울리자 다들 숙연해졌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더더욱 퇴근하기는 어렵다.


나는 결국 과장님이 9시 반에 나가자마자 짐을 싸 들고 나왔다. 짐을 급히 싸느라 팔에 얽혀 있는 스카프와 가방은 풀어지지 않은 채 바깥공기를 마셨다. 상쾌하도록 달콤했다. 그 공기를 마시고 나니 흘러가는 음악 징글 소리들도 울려 퍼진다. 호빵 파는 곳도 보이고 삼삼오오 술 마시고는 들어가는 남자들도 있다. 그렇게 멍 때리고 지하철 소굴로 들어가는 순간, 동기가 보였다. 동기의 눈은 퀭하니 피곤해 보였고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처지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남자동기랑은 말을 자주 섞지는 않지만 말을 섞게 되면 우리는 곧바로 친한 친구가 될 게 뻔했다. 같은 강풍의 적을 만났는데 안 친해질 수가 있으랴? 그래도 그에게는 말 거는 것은 나만의 금기였다.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만의 비밀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에게 나의 치부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보이고 말았다. 나의 약한 체력. 그 외에도 훌륭한 장점이 많은 사람인데 나는 계속해서 붙잡히는 약점들이 너무나 싫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치부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때였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순간, 동기는 쓰러졌다. 그것도 철도 방향의 문을 향해서 말이다. 문에 크게 부딪치며 뒤로 넘어졌는데 다행히 한국에 도어문이 설치되어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그는 죽을 목숨이었다. 그는 과로를 했는지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약골 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놀라 119를 눌렀다.


몇 분 채 지나지 않아서 119구급대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그에게 심폐소생술을 급하게 했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동기는 실려가고 말았다. 그는 내일 분명 출근을 못 할 게 뻔했다. 나랑 10시간 넘게 같이 있었던 사람이 쓰러지고 말았다니. 그것도 사회에서. 너무나 충격이었고 공포였다.


다음날, 소식이 들렸다. 부고 소식. 그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와서 그렇게 쓰러진 것이었다. 심폐소생술을 했을 때 잠깐 살아나는 듯하긴 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서 다들 오늘 장례식을 찾아갈 거라고 말한다. 어제보다 더 침울한그 분위기 덕분에 일을 못 해도 오늘은 눈칫밥을 덜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허망한 죽음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더더욱 실감 나지 않았다. 그저 잠깐 헐떡였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 버튼을 누르려고 했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와......"


나 역시 충격이 컸나 보다. 동기가 죽었다니. 잘 모르긴 해도 나로 인해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까지 몰려왔다. 그가 어제 무거운 짐만 안 들었어도, 그는 죽음의 문턱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그가 하데스의 강을 건너 버리고 말았으니, 이제 이 회사는 또 다른 사람을 뽑기 위해 채용 공고를 올렸겠지' 싶어서 들어간 채용 사이트. 그 사이트에 당연히 우리 회사의 직무를 상세히 표기한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올라온 지 30분도 되지 않은 따끈한 소식.


나는 너무나 놀라서 화장실로 가서 구역질을 하며 토가 나왔다. 상실감으로 나오는 몸의 움직임이었다. 이 회사의 역겨움이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하며 생긴 현상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 회사에서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돌아와서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다가 결국 6시에 그의 장례식으로 향했다.


그의 영정사진은 너무나 파랗게 어렸다. 그는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다. 25살이었다. 그의 이름은 성훈이었다. 석 자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에게 예를 표하고 나는 술에 취한, 울분을 토하는 그곳에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웃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만 같았지만,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은 시체나 다름없었다. 눈물, 콧물도 빠진 채 상복을 입고 계속해서 쉰 목소리로 절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다. 작은 노트북 하나로 계속해서 유튜브에 하늘 영상을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고 있다. 나레이션과 함께.
"오늘도 사람이 태어나고 사람이 죽었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향수를 목걸이처럼 착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