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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5. 2024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우리 현대인들과 맞는것인가?

수필: <마흔살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2번 정독하고

인간은 의지로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정의된다. 표상 뒤에는 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의지와 표상으로 나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로 의지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 사람은 의지로 태어나기도 하고, 그 의지 속에서 아이를 길러내며, 아이는 자신의 꿈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의지로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의지로 손가락을 움직여 타자를 치며 생각하고, 결국에는 그 생각이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즐기면서 말이다.


물론 인간은 의지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과 희망을 품고 나아가야 의지가 생겨나는 법이다. 나는 지금 영화 <미나리>를 보고 있는데, 세상은 내 의지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뛰어넘고 싶은 욕망은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이 무작정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마치 운 좋은 몇몇 사람들만이 성공하여 대기업을 형성한 것처럼 말이다.


현대인들에게 이 책이 왜 인기를 끌었을까? 생각해보면, 욕망을 버리라는 불교적 가치가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며 의지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인간의 윤활유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욕망은 인간을 파괴하며,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괴물의 수준에 도달해 추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변을 돌아보다가 읽게 된 <마흔 살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와닿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연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는 도덕적 행동과 판단은 결국 연민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람은 동정할 만한 대상을 찾고, 그에게 연민을 느낀 후에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심성과 관련해, 과연 연민이 우리에게 내재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연민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배워가는 가치일 수 있다. 학교나 부모님을 통해 연민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연민을 배워야만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연민에 관한 주장에 약간의 의문을 품었고, 이를 두 번 정독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다른 철학적 가치와 그의 사유는 우리 사회와 비교해 보았을 때 상당히 일리 있는 부분이 많다. 나는 열망과 갈망에 대해 그가 말한 가치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불교의 <싯타르타>를 읽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철학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어린 독자인 내가 평가하자면 말이다.)


나는 이 페이지를 가끔씩 되돌아보면서, 철학에 대한 생각이 바뀔 때마다 수정하며 이 글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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