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듣고 꾸역꾸역 몰려든 무리들이 서로 밀치고 부딪히면서 난리가 따로 없었겠지요? 이 와중에도, 소위 교양 좀 있다 자처하는 바리새인들 “죄송합니다(sorry!, excuse me!)”를 로봇처럼 반복하며 은근 수준 높다며 티를 낼 테구요.
한데 가증스러운(?) 품위 과시가 어울리지 않는 먼지 뿌연 그 옛날 광야 길, 북적거림을 감안하면 설사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당신 옷깃에 손을 댔더라도 감지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능력이 빠져나간 건 옷자락을 무심코 스친 많은 군중들에게가 아니라 오직 한 사람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에게뿐이라니요? 두렵고 떨렸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다가 의도치 않게 손이 슬쩍 닿은 것과는 물론 다를 수밖에요. 게다가 거기 모인 갑남을녀들이 모두 꼭 당신을 만져보겠다는 것도 아닐 테니 그냥저냥 구경 나온 저들에게 얼떨결에 스침이 무슨 효험이 있겠습니까? 열두 광주리에 담을 만큼 넉넉히 남아도 그곳에 없는 동구 밖 외부인들까지 떡과 물고기를 나눌 순 없듯 말입니다,
‘옷깃에 손을 댄 신실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면 여기저기서 아마 너도 나도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 가졌다며 ‘아멘! 접니다!’ 라며 불쑥불쑥 나설 테지요.
이들 중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며 옷깃을 만지고야 말겠다는 혈루증 여인의 진짜 믿음은 정작 몇이나 될까요? 행함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셨잖습니까? 고상한(?) 체면에 창피하다며 멀찍이서 방관자처럼 상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겠답니다.
그냥 배회하다가 당신 옷자락에 닿든지 말든지. 감추고 싶은 영혼의 질병, 육신의 아픔이 그렇게는 고쳐질 리 없습니다. 고침 받은 나병 환자 중 당신께 돌아온 오직 한 사람, 옷깃을 만지기만 해도 아픔이 깨끗해짐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라니요?
동행하고 계신데도 당신인 줄 까맣게 모르는 엠마오 두 제자와 어쩜 그렇게도 판박이일까요? 그러면서도 남들 들으라며 거들먹거리는 바리새인 같은 기도는 청산유수입니다. 언저리만 요리저리 맴돌면서 주여! 주여! 목청껏 외쳐대는 왼편 염소 쪽에 떡하니 끼어 있습니다.
그렇게 목청껏 부르짖었는데도 정작 당신은 ‘나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시네요. 미지근하여 토해 내치시겠다는 데도 착각과 교만 속을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 제게도 옷깃을 기필코 만져 치유의 기쁨을 누렸던 여인 같은 간절한 믿음을 소망합니다.
떠밀려서 부딪히듯 슬쩍 스쳤으면서도 누구보다도 훨씬 많이 만졌다며 ‘믿~습니다! 연발하는, 여전한 자가당착 속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