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 까닭 없이 여유롭고 푸근했던 건 아니었다. 학교 앞 정류장엔 들르는 버스마다 안산역을 다 경유한다잖은가? 고민 없이 올라 탄 버스, 차창을 슬쩍슬쩍 스치는 적잖은 중국어 간판들 ‘어라! 여기가 혹시 중국 땅?’ 착각할 만큼 이미 자연스러워진 원곡동 다문화 지역 풍경이다.
힘든 하루를 내려놓으며 엇갈려 지나쳤던 외국인 근로자들과 또 만나게 되는 퇴근길, 역사(驛舍) 앞 지하보도엔 좌판 노점상들의 삶이 언제나처럼 치열하다. 채소 파시는 할머니, 장신구류 진열해 놓고 손님 기다리는 아주머니, 저렴한 옷 판매대의 젊은 총각 등등, 제법 낯설지 않다, 이젠. ‘새해엔 그래도 삶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마저 놓을 수 없다는, 마음 아픈 이들을 멈추게 하는 어르신의 사주 좌판까지.
사주팔자를 살펴주신단다. 작명도 결혼, 직업운세도 따져 준다니....... 요즘 세련된 말로 그분 직업이 심리치료사? 아니면 고민 해결사나 상담 멘토쯤 되지 않을는지.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대학가나 역사 주변, 부쩍 많아진 젊은 취향의 사주카페 등과 비교는 될지? 전통시장 쪼그마한 좌판에 소일거리 삼아 용돈이라도 벌어볼 양으로, 텃밭에서 직접 키웠다는 채소 들고 나오신 시골 할머니 좌판과, 매섭게 추워도 끄떡없는 화려한 조명의 도시 마트 진열장과의 관계처럼.
깨달을 각(覺) 자가 또렷이 박힌 호랑이 그림의 까만 천을 바닥에 깔고 궁합에다 구직, 승진 관련 운세 까지도 상담 가능하다는 어르신의 사업장, 흰 종이에 직접 쓰신 선전판이 준비된 인테리어의 전부였다. 모두가 누리고 싶어 하는, 그놈의 복(福) 자가 큼지막하게 쓰인 손님 접대용 접이 의자까지 구색은 갖추었다. 신문지를 여기저기 덧대어 펴서는 대충 반 평도 채 안 되는 영역도 표시하셨고.
고객을 마주한 채 상담하던 어르신 모습을 본 게 글쎄 몇 번쯤 될지. 역술 관련 책자 들추시며 고민의 맥을 집어주던 그분과, 해도 해도 풀리지 않는다며 도무지 자신의 팔자는 왜 이런 거냐는 고객 모습이 자못 진지했다. 어르신의 해결책이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시원한 생수 같은 답은 될 수 없는 건지?
지하보도에 자리를 펴는 게 불법이라며 이따금 들이닥치는 공무원들의 단속 역시 어르신 사주팔자엔 이미 나와 있을 테다. 딱히 도리가 있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어르신의 좌판 사주카페(?)가 정겹고 낯익은 모습으로 오래오래 남아 그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복채가 큰 돈벌이일 순 없겠지만 말이다.
어김없이 오늘도 복(福) 자가 눈에 확 띄는 텅 빈 의자와 세상사를 관조하는 듯한 그분의 선한 눈길이 오버랩되며 머뭇거리게 한다. 임인(壬寅)년 새해, 새 봄엔 복(福) 단지 같은 그 의자에 앉는 이마다 희망과 해결의 메시지가 어르신의 사주 분석을 통해 전달되길 은근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