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자(debtor)

공짜로 받은 건 까맣게 잊고서.....

by 박점복
펄펄 뛰면서 날카롭게 과민 반응하는 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지 않는가?


“아니 이날 이때까지 하나뿐인 몸뚱이 바스러지는 줄도 모른 채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고생이라고 생긴 건 몽땅 다 겪어냈는데 빚을 졌다니?”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땡전 한 푼 보태준 위인 없고 오로지 나 혼자서.....”


흥분하며 큰 소리 뻥뻥 치고 있는 이 순간도 여전히 혼자일 수는 없다.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정 공짜로 들이마실 수 있도록 제공받고 있으니 망정이지 신선한 저 공기를 날마다 배달하는 이가 돈 내고 사 마시라 하면 어쩔 텐가? 우유나 요구르트 값 정도 가지고는 택도 없을 터이고.


기껏 번 돈 이것 사는 데 다 써도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텐데. 천만 만만 주인이 너그러이 받아 마시는 걸 즐거워하니 그나마 살았다고 저러지 원! “까짓것 돈 받을 테면 받아 보라지 뭐” 얼마든지 벌어서 충당하면 된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있는 건방진 화상이라니.


누군가가 길을 터주고 그 길 따라 걷게 해 주었는데, 이곳까지 태워다 준 버스기사야 내가 낸 돈으로 월급 받아 살고 있는데 빚이라니 가당치 않기는, 다만 도도할 뿐이다.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만 더디 와도 나온 입에 갖은 욕설 내뱉으며 불안해한다.


아무리 요금의 몇십, 몇 백배의 재력(?)을 가졌으면 뭐 하느냐 말이다. 꼼짝할 수 없으니. 구색 갖춰 신고 있는 번들거리는 저 구두 한 짝도 혼자서는 언감생심이다.


세계 몇 대 재벌이네 갑부네 떵떵거리면서 평생 가진 돈 다 쓰기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빚질 새가 어디 있느냐는 데 진정 그럴까? 궁궐 같은 저 저택 돈 들여지었을 테지만 기술자들의 능력을 구할 수 없었다면 편안하게 분위기 잡아가며 적포도주로 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다 돈으로 해결했다며 거들먹거릴 순 없다.


결코 누구도 채권자 인양해서는 안 됨을 깨닫지 못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는 것이리라. 내게 빚을 내준 고마운 이들에게 어떻게 벌어, 언제까지 갚아야 할는지? 우선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들을 쓸어 모아야 할 것이고 넘어져 힘들어하는 꼬마 녀석에게 일어날 힘을 보태 주어야 하리라.


정당한 대가에다 풍성한 감사와 칭찬, 격려로 포장해 덤까지 얹어 그 빚을 조금씩이라도 갚아야 할 텐데. 물론 끝은 없다. 끝내 완벽한 청산은 쉽지 않을 테지만 꾸준히 갚아 차츰 베풀 수 있는 자의 끝자락에라도 붙어 보자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속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 야 비싼 수강료 지불하고 늦게야 깨달았지만, 그 덕에 쉽게 알게 되었는데 우린 그냥 당연한 양 하고 말잖은가? 내가 무슨 빚을 졌느냐며. 너나 할 것 없이. 부리던 사환에게 주인으로 빚 진 건 털끝만큼도 없으니 나온 배나 쓸어내리면 된다잖는가? 그 누구라서 감히 시비를 걸까마는 꿈에서 학습한 데로 착하고 순한 아이처럼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내주었더니만, 빚을 갚았더니만......

그에게 찾아든 속으로부터의 주체할 수 없던 기쁨에 생전 처음 진 빚을 갚았다는 시원함까지. 남에게 빚졌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못했던 고집불통, 힘들게 번 돈 맘대로 아낀다는 데 잔소리 말라던 그 영감이 빚진 자로 변하면서 되찾은 그 환희는 무엇이었을까?

빚인 줄도 모르는 이가 수두룩한 세상에서 빚진 자 되어 꾸준히 갚아나가면 기쁨과 환희는 덤이란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진리를 그래도 찾아냈으니 감사함으로 빚을 갚고 또 갚아 보리라,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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