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회갑 사진 속 '까까머리'

새우젓, 어리굴젓 파시던 아저씨 세월

by 박점복

휘감아 오르는 덩굴을 따라 못 생긴 수세미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중간중간 노란 나팔꽃까지 어우러진, 한 뼘 남짓 마당이 들어앉은 우리 집 풍경이 저만큼에서 나를 원망하며 가물거린다.

인공뿐인 아파트 살이의 삭막함에 갇혀 자꾸만 그때를 빼앗겨도 발만 동동 거릴 뿐이라며 낮은 울타리 따라 가지런히 피었던 채송화까지 성화가 여간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자연을 거스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순박한 빡빡머리 내 역사는 천연기념물처럼 여전히 할머니 회갑연 사진 속 앞줄 두 번째 자리에 고스란하다.

떠나겠다는 세월을 겨우 간이역에 붙들어 둔 셈이리라. 되돌린 순 없다. 하지만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라치면 안타깝지만 복구 불가능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고 말 듯하다.


내뿜는 인간들의 독성이 어지간해야 말이잖은가? 그만 삶의 터들을 야금야금 강탈당하고는 무슨 기념물이라며 보호받아야만 겨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이 지천이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꽃대에 앉을 듯 말 듯 요란스레 날갯짓하던 잠자리, 긴 뒷다리만 잡아주면 열심히 방아 찧던 방아깨비, 매~음 매음, 찌르 찌르르 경쟁하듯 울어대던 매미며 여치, 논두렁에 올챙이들까지 순수가 꼼지락거리던 때가 사무치듯 그리운 까닭은 도대체 뭘까?

밀집으로 엮어 만든 근사한 여치 집에 야생 그대로의 녀석들을 잡아서는 꼼짝 못 하게 가둔 후 먹이랍시고 배춧잎, 상춧잎 등을 먹이며 커 가는 놈들을 관찰하던 것이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인공으로 사육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서야 겨우 만나는 유리 도구 속 불쌍한 녀석들과 비교는 틀림없이 어불성설 이리라.


굴뚝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이면 구성진 음률에 젓갈 파는 아저씨는 어김없이 소제동 날맹이 마을 어귀를 찾는다.

“새우젓 사려~어!, 어리굴젓~!”


“조개젓이요, 황색이 젓!”


특유의 냄새가 사방에 퍼지고 삶의 무게가 잠시 지겟대에 받쳐지면 저녁 공연 준비는 끝이 난다. 소품이라 봐야 달랑 젓갈통과 지게, 지게꾼이 전부인 무대였지만 요즘처럼 경쟁하듯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했다면 아저씨는 틀림없는 당대 최고 가수로 수상자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 터이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언제나 포근히 품어주던, 실속 한 번 제대로 챙길 줄 모르던 우리 마을이 아저씨 노래의 배경을 자처했다. 한 식구처럼 밥상만 물리면 주저리주저리 엮이던 얘기 보따리는 또 어땠는가?

반주로 변해 흐르면 노래는 더욱 몰려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공연 문화라는 사치스러운 호사야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세월이었으니 누릴 수 있던 최고의 무대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아~아! 으억새 슬피 우는~’,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가 선율을 타면 동네 아낙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 듯 무료 공연에 기웃기웃 고개 들이밀며 수준 높은 청중으로 순식간 돌변했다. 산 허리춤에 걸터앉아 쉼 없이 달려온 하루를 마감하려던 태양의 붉은 노을까지 조명 감독이란다.

기발한 판매 전략에 안사고는 배겨내지 못하던 우리 마을 아낙들과 TV 홈 쇼핑 호스트의 그럴싸한 유혹에 구매욕을 주체 못 해 들썩이는 요즘 디지털 여인네들의 반응이 희한하게 오버랩되어 눈앞에 어른거린다. 최첨단 판매 광고 전문가가 학문적으로 분석해도 새우젓 아저씨의 전략에는 못 미칠 거라는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을지......


그 세월이 내 곁을 떠난 지가 도대체 얼마던가? 간신히 깨달은, 약삭빠르지 못했던 생각에 지금도 눈가엔 이따금씩 웃음이 스치곤 한다. ‘그래 나도 아이스케키 장사 한 번 해 볼 테다’ ‘먹고 싶으면 꺼내 먹을 수도 있고 돈도 벌고.....’ 나무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통에 녹는 속도를 꽤 늦추는 장치도 곁들여진 도구를 어깨에 걸쳐 메고는 “아이스 끽여!”를 외치던 형들이 왜 그렇게도 부럽던지.

흐르는 땀을 훔치며 뱃속까지 시원했을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던 모습에 나도 저 통만 메면 얼마든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되는 줄 알았던 순수한 무지가 차라리 너무 그립다. 다 팔지 못했거나, 먹어치운 개수만큼 나중에 결국 틀어막아야 함을 깨달은 후의 황당함이라니.

동네 어귀에 커다란 흰 천막이 쳐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이스케키 중간 도매점 구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영업 현장이었다. 사업(?) 한 번 해 보겠다며 과감히 발을 들여놓은 무모함에 나 자신도 화들짝 놀랐지만 무르기엔 너무 늦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며 위로하고 있는 나였으니......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애를 고용(?)해서 장사를 시켰잖은가? 지금의 근로기준법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중간업자야 말로 꼼짝없이 미성년자 고용으로 법 위반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겠지만 그 때야 어디 그럴 여건이었는가 말이다. 이렇게 나의 첫 사업, 아이스케키 장사는 시작되었다. 아이스케키라 해 봤자 거친 얼음조각에 삶은 팥이 듬성듬성 박히고 단맛 성분이 곁들여진 나무막대가 꽂힌 간식 정도였다면 맞을까?


박자에 딱딱 맞춰 멋들어지게 외쳐 보겠다며 형들이 했던 “아이스 끽여!”를 속으로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실제로 아이스케키 통을 어깨에 메고 호객하던 겁 없던 꼬마의 외침은 생각보다 훨씬 능숙했다. 여기 가면 성진이 엄마가 계셨고, 저 쪽은 대규 아버지, 조금 멀리 떨어져 본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으니 도저히 근처에서는 장사 자체가 불가능함을 인지하고는 한참이나 떨어진 이웃 마을로 첫 사업지를 결정하는 치밀함까지 보인 것이다.

사업 기술이 뛰어나서였을까, 첫술에 배부를까 했는데 100개의 아이스케키를 받아 다 팔았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놀랄만한 성과에 같잖은 으쓱거림까지. 얼마의 이윤을 남겼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어쨌든 중간 몇 개를 먹어치웠는데도 남는 장사였으니 이게 어디더란 말인가?


보무도 당당하게 텅 빈 아이스케키 통을 어깨에 맨 채 콧노래 부르며 중간 도매상이 기다리는 천막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어린 머릿속엔 벌써 두 번째 사업지와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게 웬 한 여름밤의 꿈이더란 말인가? 그곳에 계셔서는 안 될 엄마가 창피하다는 듯,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날 기다릴 줄이야.


다짜고짜 내 손을 잡아끄시던 어머니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야 이놈아! 누가 널 더러 돈 벌어오라고 그랬냐? 도대체 남우세스러워 어떻게 고개를 들고 동네를 다닐 수 있겠어?”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듯 도매상 주인에게 미안하다면서도 이렇게 어린애에게 장사를 시키면 어떻게 하냐며 따끔하게 한 말씀하시고는 그곳을 박차고 나오신 것이다.


부모님을 가슴 아프게 한 일인지 조차 판단 못한 어리석은 어린 꼬마가 어머니의 그 아픈 마음을 이해한 건 정말 한참이나 세월이 흘러버린, 그 세월이 나를 가르쳐 준 후였으니 말이다.


‘빠듯한 살림에 새끼까지 고생을 시키는 어미가 되는구나.....’를 속으로 삭이시며 슬피 우셨을 어머니의 아린 속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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