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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내 집뿐이리

날 맞아 줄 세상 단 하나뿐인 곳

by 박점복

신발 제치며, 마침내

안 떨어지겠다는, 바둥거리던

피로의 찌꺼기 떨궤낸다, 하나씩 둘씩.

천근만근 체면의 껍데기도

눈치 살피지 않고 동댕이치고.


교양의 품위는 견지해야 한다......


꾸역꾸역 꾸겨 넣었던 아침나절과

모닝커피 속 숨었던 쓴 맛까지

입안에서 맘껏 퉤퉤 거린다.


양복저고리 옷걸이로 아가고

적당한 볼륨으로 애써 조절한 후

최대한 가증스러운 치장으로 숨겼던,

걸걸한 목소리도 이제야 맘 편히


“푸른! 아빠다”


가식 없이 뱉어낸다.


노블레스 반열에 꼭 끼어야 한다며

힘들게 참았던 그놈의 방귀도

이젠 제 세상이다.

시원하단다.

러닝셔츠 바람이다.


순한 양처럼 발길질 한 번 못 한 채

굽실굽실 처세도 양말과 함께 세탁기 속으로 쏘옥

어느덧, 배운 데로 실천할 아내가 옆에 있고


설움에 겨워 처져 버린 어깨 죽지

“오늘 하루 힘드셨죠?”

어울리잖게 코맹맹이 소리까지

평생 반려가 띄우는 비행기에

파란 저 하늘 껏 날갯짓이다.


거들먹거렸던 노란 완장, 그만

서류 가방과 함께 휙 집어던지며......


자기 최면에 까맣게 속았던 나를

이슬 서린 샤워장 큰 거울 속,

젖은 머리털 말리는 수건의

흔들림 속에 힐끗힐끗 훔쳐본다.


살벌한 경쟁자의 추격도

방어벽 되어 현관문이 막아주

주물럭주물럭 손아귀 노리개로 전락이다.


채널 선택권이야 이미 내 손에 들려졌고

슬금슬금 숨었던 아이들이 삐죽이

제멋대로인 아빠 눈치를 계산한다.


깔아 놓은 이부자리 속 파고들며

황제인양 큰 대자로 눕는다.

고상한 잠옷 대신 허름한 트레이닝복 걸쳐 입고는.


단 또 다른 내일 아침까지 만이다.


습관처럼 왼손에 든 가방과

철 지난 넥타이, 후줄근한 양복으로 무장하고선

버스에 꾸역꾸역 몸을 싣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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