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통역사 실기 시험을 치렀다(10월 8일). 어쭙잖게 농아인들 이해해 보겠다며 의욕만 앞선 게 문제라면 문제였겠다. 실력보다 앞서도 한참 앞선 시험 수준, 합격의 문턱을 못 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합격자 발표일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감이라는 게 있잖은가. 합격 일지 불합격 일지?
(글 발행을 위해 검토 중인 지금은 이미 합격자 발표가 끝난 뒤이다.)
얼마나 속이 씁쓸하던지. 어차피 떨어질 시험, 승산 없이 왜 보냐지만 솔직이 필기시험에 합격한 게 아깝긴 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세 번의 실기 시험 기회가 주어진다- 수화통역사 시험 절차) 그 기회 중 한 번은 부주의로 접수 날짜까지 착각해 놓치고 말았으니 절실함마저 없었나 보다.
무작정 해 보겠다고 덤벼들며, '역시 도전은 아름다워!' 룰루랄라 대단한 양 미화시키기만 할 순 없다. 걸맞은 도전조차 시도도 안 해보고 미리 포기하란 뜻은 결코 아니지만, 감당할 만한 도전인지 여부를 꼼꼼히 따질 줄 아는 능력 역시 갖춘다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농아인들의 언어인 수어가 우리나라에서 한글에 이어 제2 언어로 인정받는 한국 수어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당당한 법적 지위까지 확보한 것이다.
농아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인 수어, 농문화까지 이해하려면 필요한 시간은 얼마쯤 일지...... 수어 단어 중 일부를 겨우 익힌 정도인 나와 흡사한 인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겐 요원하기 이를 데 없는 주제이다.
영어 교육의 과도한 열기와 비교해 보자. 영미인들 조차 깜짝깜짝 놀라며 희한한 일인 양 이해하질 못하고 있잖은가. 오죽하면 옥스퍼드 사전에 당당(?)하게 등재된 '학원(hagwon)'이란 단어가 풍기는 우리네 사교육 현실, 그중에서도 영어에 들이는 노력과 비용은 실로 엄청나고 대단함을 부인할 자 그 누구일지.
그렇다고 영어가 우리나라에서 제2 언어로 대접받는 위상 까지는 아니다. 외국어 중 하나일 뿐인 데도 이렇듯 극성이다. 반면 수어는?
한국 수어 언어 법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진 않았다. 그래도 외국어(foreign language)가 아닌 제2 언어(second language)로 지위가 향상되었다. 물론 관심의 정도는 아주 미미하다. 아니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관련된 소수의 인원들 말고는.
수어 단어 몇 개쯤 아는 수준으로 농아인들과 어렵게 소통한다손 쳐도 단지 '단어 대 단어' 일대 일 대응 정도 수준에 그칠 뿐이니. 저들의 문화를 모르고는 결코 진정한 소통은 불가하다.
'농문화의 이해'(강사: 한국 농아 방송 DBN 박민호 앵커-농인) 강의를 듣고 나서는. 어렴풋이 인지는 했지만 이렇게 심각한 수준인지는 몰랐음을 고백한다.
꽤 많은 영어 단어를 암기했다고 원어민과 만나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띄엄띄엄 단어만 나열해도 다행히 찰떡 같이 알아차려주는 외국인이 고맙긴 해도 돌아오는 답변의 의미를 파악해 내질 못하니 의사소통이 될 리 없고 말고다. 때문에 착각 역시 금물이다.
어법을 겨우 익혀도 깊숙이 박힌 진정한 의미는 문화를 이해해 내는 능력을 갖춘 후에야 가능하지 않은가? 우리 한국어를 조금 안다는 외국인들의 한국어 사용은, 문화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한계가 분명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와 모습이 똑같고 사는 땅이 같아도 농아인들은 저들만의 언어인 수어를 가진, 한국인 같지만 엄밀히 말해 한국인이 아닌(?) 자들임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아니 비록 말은 못 하지만 우리 글자 한글은 아는 것 아닙니까?' 한데 이게 전혀 우리네 청인(聽人)들의 생각일 뿐 저들에게 문자는 없다. 우리 한글이 저들에게도 통용되는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한글을 익혀 잘 사용하는 농아인들도 적진 않지만 말이다) 농아인들에게 글자가 없다니. "어허! 참 이해가 안 되네요"
문화 속에 깊숙이 담긴 내면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채 겉만 슬슬 건드려서는 영미인 들을 얼핏 얼핏 알 뿐 모르듯이 똑같은 원리가 우리 한국에 살고 있는 농아인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짬뽕과 짜장 중에 고민하는 데, 친구가 이 집은 짜장이 맛있다고 해 짜장을 시켰다"(식당에서)
기껏 수어 단어 좀 안다며 이를 표현해 내는, 농아인들 입장에선, 외국인인 우리의 표현 능력은 이렇다.
"짬뽕, 짜장, 고민 중, 친구, 이 집, 짜장, 맛있다, 때문에, 짜장, 명령(시키다)"
웬만큼 아는 수어 총동원해 통역한다고 했는 데 농인들은 왜 고개를 갸웃거릴까. 아니 빠짐없이 단어를 잘 연결했는 데 왜 이해를 못 하냐는 것이다. 저들의 문화가 녹아든 어순과 시각(視覺) 언어인 수어에서의 표정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짬뽕, 짜장, 둘 중 고민, 어! 짜장 맛있어? 그럼 짜장 주문"의 어순으로 표현해내야 저들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단다.
영어 어순과 우리말 순서가 다른 것임을 인지하지 않고는 영어 원어민들이 우리말을, 우리가 영어 사용자들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언어 속에 문화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I go to school to study English everyday."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말 어순과 문화에 맞춰, "나 매일 영어 공부하러 학교에 가" (I everyday English to study school to go.)라고 한다면 의미 전달은 요원하며 저들은 멀뚱멀뚱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다.
이것은 우리말 조금 한다는 외국인들이 그만큼의 수준으로 밖에우리말, 정서, 문화를 이해하는 한계이지 않을까? 때문에 언어 공부와 함께 농아인, 영어 사용 원어민들의 문화를 함께 공부해 나가야 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외국어 좀 하시네요!' 소릴 들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