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이 생길 듯한 틈새란다. 손바닥 크기만한 땅 떼기도, 좁아터진 공간도 기필코 찾아내 가만 두질 않는 인간들의 신기(神奇)에 가까운 재주(?).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대단하잖은가, (아니 위대하기까지 하다).
하다 못해 택시 지붕에 있는 자그마한 캡(cap)조차 뭔가를 광고하지 않고는, 아니 악착같이 써먹지 않고는 영리를 추구하는 이들에겐 아까워 죽겠다는 영역이다.
요즘엔, 현란한 전광판 기술까지 접목되어 그야말로 움직이지 못하던, 예전 현수막 수준 광고는 설 자리조차 서서히 잃어가고 있으니.
이윤을 창출해 낼 수만 있다면야, 하늘 뜻 멋대로 해석해 내는 희한한 능력과 엉켜 자칫 사라져 버릴 뻔한 것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교묘하게 변형시켜 원래 모습을, 순수를 찾아낼 수가 없다.
부랴부랴 뒷북치며 천연기념물이네, 세계 보호종이네, 유네스코 지정 보호 문화제다 난리에 법석까지 떨고들 있다.
저들이 곁을 떠난다는 건 결국 우리모두도 머지않아 이 땅을 떠나야 할 불쌍한 처지가 되고 만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며칠 전 별생각 없이 걷다가 눈에 쏙 들어온, 광고 문구라고는 없던(그랬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노란색 버스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도 했지만. 간만에 만난 순수를 품은 버스계의 천연기념물쯤이라면 너무 나간 걸까?
물론 자가(自家) 승용차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편리를 추구하겠지만, 공공재(材)인 버스나 택시, 전철은 여백이다 싶은 곳은 족족 가만 두질 않는다.몽땅 다 돈과 관계를 맺으니.
예술과 상업이 혼재된 광고들로 눈이 다 어지럽다. 광고 없는 버스나 영업용 택시는 앙꼬 없는 찐빵처럼 허전한 게 받아들이기조차 쉽지 않으니. 혹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자본과 이익 창출을 극대화해야 하는 현대를 사는 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란다.
버스, 지하철 내부(內部)인들 예외일까? 좌석의 뒷면, 창문, 하다 못해 손잡이까지. 버스 정류장, 역사(驛舍)를 막론하고 이런 흐름을 독불장군처럼 비켜나간다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는 낭비(?)가 된다. 공간 활용의 극대화란다.
어지럽다고 옛날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냐 따져 묻는다면 왠지 그 황당해할 모습이 궁금하긴 하다.상상이 되긴 하는가?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나 택시가 다시 오래전 순수 원색의 치장 밖에 없는 세월로 돌아간다면......
어쨌든 오늘 옆을 스쳤던 노란색 천연기념물 같던 순진한, 아니 왠지 촌스런(?) 단색의 버스가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영업용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안타깝게도 '휙' 지나쳐 간 바람에 사진으로 담아내진 못했지만. 당연시했던, 그러나 결코 놓칠 수 없는 뭔가를 깨우쳐 주었다.
서서히 스며들어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들 떨쳐내고 원래로 돌아갈 순 있는 것일까? 편리해진 그리고 화려한 현재의 삶을 순수하고 아련한, 하지만 불편한 그때가 과연 이겨낼 순 있을는지.
아무리 화사해도 디자인이 세련의 극치를 달려도 결코 채우고 메꿔낼 수 없는 마음 속 한 구석, 허전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은 오로지 이것만이 채울 수 있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며 산다.
바로 '순수'. 순수를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영원히 놓지 않으려 무던 애를 써 본다. 물론 '화려함'과의 쉽지 않은 경쟁을 꾸준히 해나가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