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들꾸들 상처야 세월 흐르면 어련히 잘 아물까 생각했는 데 아닌 가 보다. 특히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낸 이별의 아픔은 사라질 줄 모른다. 아니 안 사라진다.
최고 명의(名醫) 면 뭐 하나 깔끔하게 감쪽같이 회복시킬 수는 없다는 데. 단지 잠깐 더 깊은 곳으로 밀어내 안 보이는 걸로 착각토록 할 뿐 어딘 가에 여전히 꽈리 틀고 앉아 약해진 면역력을 기가 막히게 감지한단다. 그곳을 다시 집중 공략하기 위해.
칼로 물을 베면, 배 지나간 자리는 감쪽같다는데...... 흔적을 진정 못 찾는 걸까? 물은 알고 있다. 배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해도 자국조차 없앨 순 없는 일이다. 없었던 일이 될 순 없단 뜻이리라.
하얗게 샌 머리 짧게 자른 채,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 기운 없이 타고 계셨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펴서는 한껏 제 때를 즐기는 분홍 진달래, 백옥처럼 흰 영산홍 쳐다보시며. 끊이지 않는 추억담 소환해도 가만히 감으신 눈 뜨고 싶어 하지 않으신 채 말이다.
"엄마! 진달래, 영산홍 활짝 핀 것 좀 보세요. 너무너무 예뻐하셨잖아요. 기억나?" 아들만 안타깝고 맘이 쓰라려 어쩔 줄을 모른다. 괜한 자책감까지.
신이 정해 준 한계, 결코 피할 수 없고,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길 건강하게 맞길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인생들 맘먹은 데로 돼야 말이지 않은가. 발만 동동 구를 뿐.
원하는 데로 조정이 쉽지 않은, 고개 연신 받쳐드는 아들의 회한과 어르신의 힘든 나들이가 사라진 줄만 알았던 내 마음속 흔적을 새삼 떠오르게 할 줄은.
스스로 마실 다니시고 친구들 만나 봉지 속에 든 달짝지근한 믹스 커피 한 잔 서로 나누며 이런저런 세상 얘기로 채우던 재미는 그나마 삶의 빠질 수 없는 낙이셨다.
"목사님 설교가 오늘은 맘에 쏙쏙 들어와 감동을 주네요" 교우들 삶 이러쿵저러쿵 반나절이 금방이었고요. 그런 어머니를 요양원에 의탁한 후, 효도 흉내 낸답시고 또 불효자 소리는 적어도 안 듣겠다며 찾아뵙지 않았던가. 옆을 스쳐 지나는 어떤 아들과 어르신의 휠체어가 오버랩되며 아려왔다.
우리 어머니 생전과 너무도 빼닮은 그 어르신의 쳐진 고개, 따스한 봄 추억 그나마 꼭 되찾아드리겠다는 효심이 희미해져 가던 기억을 또렷하게 되살려내고 있었다. 유식한(?) 말로 트라우마(trauma) 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