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떠나보내지만, 버스정류소는
다시 떠오를 줄 믿기에
쭉 뺀 목으로,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한참을 기다렸다, 버스를. 날씨마저 갑자기 추워져서는. 그래도 늘 그 자리, 정류소 너는 당연히 있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책임감을 새삼 떠안긴다. 눈바람 피해 우선 머리부터 들이밀며. 어떤 승객인 내가.
모처럼 발까지 시린 맹추위가 위세를 떠는 한겨울도 역시나, 삐질삐질 흐르는 땀 연신 훔칠 때도 묵묵히, 냄비에 뭐 끓듯 파닥거리지 않고 우직하게 그곳에 있어 주니 어찌나 고마운지.
'혹시 날 못 보고 그냥 지나치면 어쩐담'. '52번 버스가. '잠시 후 도착 예정' 전광판의 안내, 기계음 소리까지 여러 번 반복하며 상기시켜 준다. 그래도 초조하다.
배차 간격(term)이 웬만해야 안심할 텐데. 다른 버스들 뻔질나게 드나드는 건 관심 밖이다.
온열 의자 서비스까지 받으시라 격하게 반기지만 난 우물쭈물. 무경험자의 불안이다. 지그시 감은 눈, 아까부터 초등학생과 그 엄마는 따뜻하단다. 경험자인 게 맞다.
촘촘하게 얽힌 하루 일과, 마침내 끝내고는 구속을 벗어던지는 어린이들, 청소년들 흩뿌리는 눈발과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패기로 맞서려다 한계를 느낀다. 귀갓길 정류소 좁은 지붕 아래는 그렇게 여러 색깔들로 북적였다.
'연세(年歲)'라 칭할 세월을 사신 분들이나 앉으셔야지, 거기 미치려면 한참이나 먼 어린(?) 나 정도가 앉기는....... 젊게 봐주는 이 아무도 없거늘 괜히 착각하며 설레발이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반갑게 버스에 오른다. 비로소 '온열 의자'에 자리가 나고. 손으로 먼저 따뜻함 감지하곤 감사한 맘으로 엉덩이를 붙인다. 여전히 못 미더워하며.
저런 참신한 아이디어의 주인공 누구일까? 혜택만 오롯이 받는 이기적인 난, 오늘 하루도 그냥 빚진 채로 보낸다. 남들에게 피해 안 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합리화의 대가, 개미처럼.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버스가 드디어. 얼른 오르란다. 운이 받쳐주니 빈자리까지. 춥지 않게 날 보듬었던 '온열 의자', 그 버스 정류소를 떠난다, 미련 없이. 따뜻했던 유혹에 자칫 빠질 뻔했지만......
급하게 쳐들어 온 탓에 대비가 어려웠을 버스 정류소, 강추위를 어찌 버틸까? 아직은 그래도 초저녁, 추위를 견디며 귀가를 서두르는 이들 옹기종기 온기를 함께 나누니 망정이지.
마지막 버스가 작별 인사를 건네고 적막이 친구 하자며 손 내미는 늦은 밤이면 정류소는 외롭고 추운, 깜깜하고 무서운 밤 혼자 어찌 보내는지? 내일도 버스는 타야 하고, 다시 만나야 하는데......
긴 밤 꼬박 새우며 외로움, 적적함 이겨낸 새 날, 정류소는 언제 그랬냐며 다시 찾은 '갑남을녀'들에게 손을 내민다. 들어 오란다. 홀로 남겨두고는 매몰차게 떠났던 나를, 당신들을, 그대들을 베알도 없이 다시 품으며.
이게 극비 전략이다. 어두움, 외로움, 쓸쓸함도 너끈히 이겨내는. 그렇게 새로운 얼굴로 그대들을 팔 벌려 맞을 수 있는, 시어머니만 아는 전수 불가의 비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