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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점? 흑일점?

첫 부임지에서

by 박점복


그토록 기다리며 원했던 발령장을 받아 들었다. 한편 설레는 마음 숨길 수 없기도 했지만 두근두근 떨리는 두려움 역시 억누르기 어려웠다. "교사 박ㅇㅇ 안성교육청 근무를 명함"

도교육청이 있는 수원을 떠나 첫 부임지를 발령낼 안성군교육청을 향해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멀고 또 험하든지. 연고라고는 없는 경기도 땅 이곳저곳을 처음 찾아 나서는 길이란 불안 초조 그 자체였다.

1시간여를 달렸을까 안성에 버스가 도착을 한다. 이쯤이면 첫 교직 생활을 시작할 학교가 "짠"하고 나타나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한데 이곳 안성군교육청에서도 30분 정도를 더 달려야 비로소 도착하게 된다니, 나의 첫 부임지가. 진정 이렇게 멀어도 된단 말인가. 게다가 초행길이잖은가.

안성교육청에서 또다시 받은 발령장에는 "죽산중학교 근무를 명함" 이라며 죽산을 향해 서두르란다. 게다가 안성에서 출발해 죽산을 향해 가는 버스가 달리는 도로는 곳곳이 비포장 상태로 덜컹덜컹 지친 몸을 더 초라하고 초췌하게 만들었다. 1980년 당시 우리의 버스 상태와 도로 사정은 이젠 TV 역사 관련 프로그램에서나 가끔씩 접할 수 있는 장면 아니던가.

구비구비 역경(?)을 뚫고 마침내 첫 근무지 죽산중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관련 용어가 수차례 바뀌고 변해 요즘은 '행정실'이라 부르지만 당시는 '서무과'라 불렸으니 그곳에 발령장을 제출하고 당당(?)하게 부임 신고를 한다.

1980년 3월 10일, 발령 동기 초임교사 4명이 선배 교사들이 근무 중인 교무실이라는 곳에 들어서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한 후 교장선생님을 만나는 절차를 밟았다. 쭈뼛거리며 자리를 잡는다. 학창 시절 그렇게도 무섭고 떨렸던 그 교무실에 교사로 발령받아 들어 서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때의 그 감정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겨야 잘 한 건지. 출중한 실력으로 풀어내지도 못하니 그 감정에게 다만 미안할 따름이다.

4명의 초임교사는 남자인 나와 3명의 여교사들이었다.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교직엔 여전히 여교사들이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점하고 있는 걸 보면 어떤 설명이 가능한 건지.......

우리 새내기 교사 넷을 소개하시던 교감선생님의 말씀 중 지금도 잊히질 않는, 유일한 남교사였던 날 소개한 단어 '흑일점'이었다. 난생처음 들었던 표현이고 말고였다. 나머지가 모두 여성들이고 그중 한 명만 남자일 경우, 흔히 '청일점 ㅇㅇㅇ를 소개합니다!'가 일반적이었기에 '흑일점 박ㅇㅇ 선생님을 소개한다며 내게 인사말을 하라셨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아니 이 분이 내가 좀 까무잡잡한 피부라서 일부러 그 흔한 표현 '청일점' 대신 '흑일점'을 사용하신 걸까 지금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한다. '흑일점'은 주로 일본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인터넷 정보를 통해 터득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청일점이든 흑일점이든 4명 중 유일하게 남교사로 발령받아 시작한 교직 생활이 아련한 기억 속에 가물가물 자꾸 멀어져 가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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