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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간 홍시 한 상자

가정방문

by 박점복

청운의 부푼 꿈을 펼칠 수 있었던 첫 발령지 죽산에서의 아련한 기억은 꽤나 긴 세월이 흘렀어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뇌리 속 저 깊은 곳에 터줏대감처럼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행세를 한다.


1981년 안성군 이죽면 칠장리의 가을은 발갛게 잘 익은 홍시처럼 달콤하게 맛있게 남아있다. 울긋불긋으로 온 동네를 물들인 나뭇잎들과 최고의 조화를 뽐내고 있었다. 이렇게 채색된 수채화를 세상 그 어떤 화가가 그려낼 수 있을까?



가정방문이 학교 교육활동에서 자취를 감춘 채 떠난 게 언제쯤부터였을까? 각박해진 세태에 불신까지 겹친 공격에 그 많던 장점 뒤로 한 채 영영 떠나 돌아오질 않았으니 초임지 칠장리에서의 교육 활동 가정방문이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 역사적 흑백 사진으로 고스란히 찍혀 있다.


간혹 자동차들로 꽉 들어 찬 복잡한 큰 도로 한 모퉁이, 시골에서 갓 따온 맛난 감이라며 팔고 있는 과일 장수 트럭이라도 마주 칠 때면 칠장리 명국(가명)이 아버님이 한 상자 가득 채워 건네시던 홍시가 자동 오버랩된다. 교직을 내려놓았다고 잊힐 정(情)이겠는가?


아들을 맡아 사람 만들어 주신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식 뻘 밖에 안 되는 젊은 선생인 내 손을 잡으시며 하얗게 센 머리 숙이셨으니. 나를 얼마나 당황케 하시던지.


"아이고! 우리 선생님 오셨네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손수 와 주셨냐는 것이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러 요즘 아이들은 역사책 속에서나 겨우 접할 사건이 되고 말았지만. 하찮은(?) 제가 어찌 이런 융숭한 대접을.......



요즘이야 선생과 학생과의 관계가 지식을 팔고 사는 경제적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구렁으로 굴러 떨어져서는 더 이상 헤어 나오지도, 벗어나려고 노력 조차 통하지 않는 삭막함이 대세가 되었잖은가. 안타깝기 그지없음은 나만의 과도한 개인감정일까?


감이 익어갈 이 맘 때 즈음이면 영락없이 생일 돌아오듯 또렷해지는, 잘 익은 홍시 건네시던 칠장리 인심과 명국이, 명국이 아버님의 순수가 마음속 깊은 곳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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