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80 40 20

플래카드(placard)

제자 자랑 팔불출(?)

by 박점복

특히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속칭 명문대라는 곳에 출신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합격했는지, 수도권 소재 대학까지 망라한 총 합격생 수는 또 몇 명인 지를 셈하느라 바빴다. 게다가 ○○대학은 수석까지 차지했다는데 자랑을 빠뜨릴 수 없다잖은가. 입시철만 되면 중고등학교 교문 앞과 담장은 늘 이처럼 각종 홍보 현수막으로 어수선했다.



자랑하기 바빠 과열 경쟁이 파생시키는 심각한 부작용까지는 고려할 여유 조차 없었나 보다. 학부모와 후배들을 현혹시키며 어지럽게 만드는 데 한몫 톡톡히 한 것 또한 분명했다.


폐해가 점점 도를 넘자 교육 당국에서는 마침내 현수막 게시라는 경쟁적 행위를 못하도록 막았다. 금지 조치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물론 처한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이었지만 말이다.


1980년대 과학 강국의 기치를 내걸었던 정부는 정책적으로, 재정적 지원으로 영재(?) 육성이란 특수 목적을 위한 과학고등학교를 경기도에 처음으로 설립했다. 소위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을 조기에 발굴해 기필코 선진국을 따라잡겠노라는 원대한(?) 국가적 포부가 담겨있었다.



입학 조건이 좀 까다로왔겠는가? 때문에 합격생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파격 그 자체였다. 월반이 가능했고 졸업하는 데 정규 고등학교 과정처럼 3년이 꼭 필요치 않았다. 2년 만에 과정을 끝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으니.


그런 특수 목적고인 과학고에 ○섭이가 합격의 영애를 받아 안았다. 도시 지역과는 달리 열악한 여러 장애 요인들을 극복하고 이뤄낸 쾌거였으니 어찌 학교의 자랑거리가 아니었겠는가? ○섭이 동네 삼죽면의 쾌거였기도 했다.



교문 위에는 "경(慶) 심○섭 경기 과학고 합격! 축(祝)"이라는 큼직한 현수막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도시 지역 학교에서도 쉽게 거둘 수 없는 경사였으니 오죽했을까. 대학 합격률이 다른 학교보다 월등히 우세하다며 내건 현수막과는 질(質)적으로 다르고 말고였다.


"삼죽면의 아들 경기 과학교 합격!" 이라며 마을 주민 모두도 자기 일인 양 열광의 도가니였다. 온통 잔칫집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학교 또한 ○섭이네가 마련한 떡 잔치로 풍성했다.


자식 잘 되면 부모의 어깨에도 잔뜩 힘이 들어가서는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던가? 자식 농사 잘 지었다며 칭찬도 자자했을 터였으니 팔불출이면 어떠냐는 부모님 심경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제자의 합격이 마치 내가 도전해 갖은 난관 다 극복하고 얻어낸 합격처럼 초임교사로서는 또 만나기 쉽지 않은 기쁨이었다. '혹시 내가 잘 가르친 걸까.......?' 착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쭐해했던 속내를 들킨 게 대수이겠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생님! 저 여자 친구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