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다리의 장애는 덕이에겐 아픈 가시였다. 하지만 끝내 극복하고 얻어낸 승리는 제자였지만 본받고 싶었던 훌륭한 롤모델 중 하나였다. 남이 갖지 못한 재능을 하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게 틀림없고 말고였다. 그 빛나는 보석을 소개하려 한다.
먼저 장벽을 너끈히 뛰어넘으며 학급 대표 농구 선수로 투혼을 보인 체육 활동이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부딪혀 몇 번 씩을 넘어져도 결코 질 수는 없다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그의 학급 대표 선수 출전을 장애가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 역시 덕이를 명단에서 빼서는 안 된다며 성화였다.
간혹 선생님들과 함께했던 탁구 시합은 또 어땠는가? 독특한 탁구 기술에 번번이 당하고 말았으니, 누가 덕이를 장애를 가졌기에 부족할 것이란 편견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물론 교사들 실력이 허당인 탓도 있었지만 말이다.
또한 급우들의 가려운 부분을, 특히 학업의 어려움 때문에 쩔쩔매던 친구들의 둘도 없는 맞춤형 멘토이기도 했으니 선생님들의 칭찬과 격려를 한 몸에 받을 만큼 출중한 통솔력과 책임감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에게 수시로 찾아들던 장애가 주는 고통과 아픔이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만 내색 한 번 없이 굳건히 이겨내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다. 밀어닥치는 커다란 장애의 파고를 극복하던 피나는 노력은 후반전 내 삶에도 긍정의 아이콘으로 톡톡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포기를 모르던 의지로 마침내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었으니, 천하 영재들을 모아 가르치는 게 인생삼락(人生三樂) 중 하나라던 맹자의 가르침이 떠오르며 뿌듯해진다.
그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그의 독특한 재주는 다른 데 있었다. 노래를 창작해 내는 능력이다. 가사는 물론 노래 내용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맞춤 곡을 작곡해 내던 중 3 학생이 가진 놀라운 예술적 감각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따로 배운 적 한 번 없었다잖은가.
학교마다 전통과 역사를 기리며 영원히 발전시켜 내겠노라는 결의와 희망이 담긴 교가(校歌)가 있다. "○○산 정기 어린~~"으로 시작하는, 지역 명산의 영험한 정기까지 받아 학교를 발전 계승시키겠다며 저명한 작가의 도움을 받아 가사를 짓고 또 훌륭한 작곡가의 곡을 통해 완성된 교가를 행사가 끝날 때면 약속처럼 늘 제창하던 그 교가 말이다.
그 시절 덕이는 자신이 속한 학년 3학년, 7개 반 전체의 반가(班歌)를 혼자서 작사 작곡해내는 기염을 토했으니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어도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아련함이다.
음악 선생님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며 출중했던 중학생 덕이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셨으니 일러 무엇하겠는가? 손수 작사 작곡해 선물로 주었던, 내가 담임했던 반(班)의 반가를 남겨 두지 못한 게 진한 아쉬움으로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