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이 귀촌하기 시작했다. 1차 산업이라며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농업, 축산업, 어업에 첨단 스마트 기법을 덧댔더니 경쟁력 갖춘 당당한 분야로 떠오르지 않던가. 피땀과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땅이 주는 선물을 덥석 덥석 잘 받아먹고는 있다. 최첨단 IT산업 못잖게 귀한 대접 모처럼 받는 시대를 살면서.
하지만 산업의 뿌리인 농업이 오로지 전통 기법인 노동력에만 의존하던 시절, 하늘의 노여움까지 겹쳐지면 그해 농사는 그냥 '죽 쒀서 개 준다'는 옛말처럼 껍데기뿐인 한 해를 보낼 수밖에 없던 때도 그리 오래전 일만은 아니다.
일손 하나가 금싸라기같이 귀하던 때였으니 많은 자녀들이야 말로 든든한 농사의 자원이고 말고였겠다. 농촌 지역 학교에 발령을 받았지만 농사일에 대해선 일자무식 아는 게 하나 없던 내게 모내기(농번기) 방학은 이름 자체부터 낯설었다.
중소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데다가 부모님의 생계 수단 역시 농사와는 거리가 먼 건축 노동에 종사하신 터라 가끔씩 부모님을 따라나서 보조 일손으로 도와 드렸던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런 삶의 배경뿐인 내가 그렇게 초임지에서 맞은 모내기 방학, 가정 방문 지도 겸 일손 돕기라며 나선, 생전 처음 가까이서 부딪힌 현장과 풍성한 정이 오간 모내기 들녘이라니. 마을 주민들 모두가 품앗이로 서로 내 집 네 집 구분 없이 부족한 일손 채우며 돕는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을 서양의 그 무엇과 견줄 수 있겠는가?
책에서만 배웠던 모를 내는 힘든 일손들을 흥겹게 북돋는 농악, 기다리고 기다렸던 맛있는 새참 시간 등을 몸소 겪도록 해 준 일죽면 모내기 현장에서의 소중한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내 삶의 역사가 되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못 줄을 당기기도, 직접 논에 발을 쑥쑥 빠뜨리며 모 심던 우리 아이들의 어른스럽고 능숙했던 솜씨를 잊을 수가 없다.
첨단 이양기로 그 넓은 논을 순식간에 가지런히 채워내니 일일이 손으로 한 모 한 모 심던 그 세월은 옛날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보게 되는 격세지감을 절감하지 않던가.
아마도 그 옛날 힘들었지만 추억이 깃든 모내기철, 일손을 도우라며 교육과정 속에 포함되었던 모내기(농번기) 방학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역사가 되었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 명도 채 낳지 않는 우리나라 신생아 출산율의 여파는 시골에서는 가히 쓰나미급 위력으로 닥쳤으니 농어촌, 산촌에는 아기 우는 소리라고는 더는 들을 수도 없다잖은가.
그렇게 경험한 모내기 들판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추억 속 사진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련함 때문에 힘들었던 일죽면 모내기 시절로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일, 우리네 농어촌 산촌도 풍요로운 삶의 들녘으로, 바다로, 산야로 새로워질 그때가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