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싱어'라는 J방송사의 독특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대한민국 대표 가수의 목소리와 창법을 거의 흡사하게 소화해 내는 모창 도전자를 뽑는 노래 대결이다. 도전자의 뛰어난 가창력과 곡 해석 능력 따위는 별반 중요치가 않다. 오히려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 훨씬 높아진다. 대표 가수와 모창 가수의 경계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해야 승산이 있다.
처음 불러 유명세를 탄 가수를 어떻게 따라 할 지에 온통 초점을 맞춰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하지 않겠는가? '어라! 진짜 그 가수가 노래하는 줄 알았어.' '똑같네! 똑같아!'라는 평가 말이다. 원래 그 노래를 처음 불렀던 가수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니 평가단의 실력 문제일까 모창 가수들의 실력이 뛰어난 걸까.
히든싱어처럼 모시(模詩)?, 모수필(模隨筆)? 대회 같은 희한한 경쟁이 있다면 어떨까? 창작과는 별도로 누가 원작에 가장 가깝게 기법과 감성을 모방했는 지를 고르는 대회 말이다.
요즘이야 거의 모든 글쓰기와 편집 활동이 컴퓨터를 기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소위 모방을 해낼 게 무엇일까? 예전처럼 손으로 직접 원고지에 시나 수필,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기에 글씨체의 모양, 편집의 모양새는 100% 똑같이 모방할 수 있으니 과연 어떤 영역을 평가 기준 삼아 우승자를 지정할 수 있을지?
원작자의 감성과 풍부한 표현 능력을 몸으로 직접 느껴 자신만의 것으로 독특하게 꾸려내는 지의 크기가 가장 높은 비중의 배점 항목이 되지 않을지.
그렇다고 따라 부르기, 따라 쓰기 기법이 쉽단 뜻은 결코 아니다. 틈새를 파고들어 나름 그 분야를 새로운 장르로 개척해 활동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창 가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노래를 처음 취입한 원가수는 결코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며 두 영역은 그러기에 엄연히 별개이다.
"모방은 창조의 아버지"라잖은가. 유식(?)하게 벤치마킹이라고도 한다는데 글 쓰는 영역 또한 예외는 아니리라. 그 과정과 절차를 꾸준히 밟은 자가 창조를 향해 디딤판을 박차고 올라설 수 있고 말고다.
타고 난 탁월한 재능이 없진 않겠지만, 이런 재주를 선물로 받지 못한 이들에겐 잘 따라 하는 훈련만큼 창의력을 일깨우는 방법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붓글씨 배우던 어린 시절, 선생님 체본(體本) 밑에 받친 채 그대로 베끼듯 써내려 갔던 기억이 살아난다. 베껴만 쓰다가는 평생 자기 감성과 글씨체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어설퍼도 내 노래, 내 글을 새롭게 부르고 써야 할 테다.
문외한이었으니 색연필이나 파스텔로 대충(?) 그린 초등학생 수준쯤의 그림 아니냐며 같잖은 평가를 했겠지만 그게 거장 피카소의 걸작이었다니....... 갑자기 예술을 대하는 혜안이라도 생긴 걸까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짧은 지식 총동원해 고상하게 짜깁기를 해 보지만 이미 바닥은 드러난 뒤잖은가.
'내가 그려도 훨씬 세련되게 더 잘 그릴 수 있다'나 어쨌다나 라며 피카소의 창의력을, 천부(天賦)의 선물을 콧방귀 뀌듯 킥킥거릴 땐 언제고, 행여 이 안면몰수가 누군가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피카소의 범접할 수 없는 걸작이니 수많은 평론가와 비평하는 이들의 견해 또한 걸맞은 평가가 내려지리라. 아무리 싱크로율 거의 100%에 이를 만큼 따라 했어도, 원작이 아닌 누군가의 모조품인 게 밝혀지는 순간 싸늘한 평가의 눈길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 모조품도 모조품으로써의 대우를 받긴 하겠지만.
대가의 작품인 줄 알았을 때와 무명 화가가 그렸음을 파악하고 난 후 180도 달라진 평가의 변(辯)을 들을라 치면 감상자의 선입견이 작품 감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품위 있고 고상하게 해설했던 시(詩)가, 수필이, 소설이 아마추어의 풋내 나는 작품으로 밝혀진 후 달라질 저들의 돌변이 왜 이렇게도 궁금할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사여구 마구 동원해 추켜 세우며 칭찬 일색일 땐 언제고 안면 몰수 감쪽같이 시치미를 뚝 뗀다. '대가의 작품이 아니라고 진즉에 귀띔해 줄 것이지......' 말 끝을 흐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 있게 디딤돌 딛으며 도약해 본다. 따라 부르기 가수가 나름 틈새를 공략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내듯 말이다. 내 글 또한 N분의 1이 아닌 나만의 독특함이길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