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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수

영국 옥스퍼드

by 박점복

이런 행운이 찾아오긴 오는 가 보다, 사노라면. 상황과 시기가 기막히게 척척 맞아떨어졌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을 터였다. '남의 집 얘기'겠지 라며 습관처럼 그저 부러워만 했을 텐데.




영어교사 해외연수 프로그램, 참가자를 선발한다는 교육청 공문이 눈에 확 띄었다. 물론 여건과 형편만 허락했다면야 개인 차원에서도 국외로 실력 향상을 위해 연수나 유학은 떠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럴 여유(?) 로운 형편까지는 아니었으니.


선발되려면 이런 조건을 갖추란다. 공(公)적 영어 인증 시험 응시, 기준 이상의 점수 획득과 5년 이상의 교직 경력, 교육 기여 활동 등.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는 절호의 기회인 데다가 다행히도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명단에서 내 이름 '박○○'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라니. 마치 경기 내내 뒤지다가 얼마 남지 않은 연장 시간에 극적으로 역전한 팀의 환희였다면 맞을까. 행운권 추첨에서 조차 슬슬 빗겨 간 게 수도 없었으니...... 연수도 받고 저들의 삶을 접해도 보는 생생한 기회는 언감생심이었고 말고였잖겠는가.


요즘처럼 여권(旅券)을 따로 발급받아 소지하는 일이 흔치 않았던 1995년, 짧은 연수 기간만 유효한 관용 여권으로, 게다가 1박까지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사상 관련 교육까지 받게 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중 국가를 나름 선정 기준에 따라 배정한 후 발표하겠단다. 은근히 '미국이었으면......' 바랬던 속내를 감추긴 쉽진 않았다.


영국 옥스퍼드로 연수국이 결정된 후 썩 내켜하지 않았던 배부른 투정, 떠나기 전 서운함은 다녀오고 난 후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영국 연수가 삶과 교직생활에 깊숙한 옹이로 남아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니.......


누가 뭐래도 우리네 영어 교육은 미국 영향이 큰 비중을 차지함을 여전히 부인하긴 쉽지 않다. 발음과 철자 체계 등 영국과 다른 경우는 거의 미국 쪽에 치우쳐 있는 걸 보면.

처음 영국에 발을 딛던 날, 충격처럼 다가왔던 것이라니. 데굴데굴 구르는 듯한 미국식 발음과 마치 독일과 미국의 중간 어디쯤 인 듯한, 하지만 상당히 또렸했던 영국식 발음의 차이였다. 물론 나의 영어 구사 능력과 수준이 영국과 미국식을 명확히 구분해 낼 만큼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한, 잊지 못할 발음은 바로 "Not at all"이었다. 변변찮은 실력이긴 했어도 "나-(ㅌ) 래 롤"에 훨씬 익숙했던 내 귀에 들려온 저들의 발음 "나태톨"로 't'가 명확하게 살아 있었으니 난감함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영국을 시작으로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의 연수도 참가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으니 교사로서의 경력뿐 아니라 삶의 영역 확장에도 큰 몫을 담당했고 말고다. 여러 이유들로 사라진 해외연수 제도가 못내 아쉬운 까닭이다.

문법 공부 중심, 시험 성적 높이기에만 온통 초점을 맞춘 전통적 교수법에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생존(survival) 영어의 중요성이 가미된, 진정 실용적인 교수-학습법을 고민하는 교사로 거듭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다양한 저들의 교육 방식과 홈스테이를 통한 가정생활 체험이 이후 나의 교수-학습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꾀하도록 하였으며, 아이들에겐 생생한 학습 자료 제공의 몫을 가능케했으니 교직 생활의 굵직한 획 중 하나로 어찌 당당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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