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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희 시인의 공평, 나의 공평

by 박점복


시인 송명희의 찬양 시 '공평하신 하나님! 을 접할 때면 언제나 '아니 저 시인은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닌 게 분명하지......' 아니나 다를까 흔히 장애, 그것도 중증장애라 일컫는 그 어려운 신체 조건인데도 어떤 투시력을 가졌기에 저렇게 노래할 수 있단 말일까.

공평의 저울 위에 자신을 올려 바늘이 가리키는 지침을 해석해 내는 저런 능력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기회가 되기만 하면 직접 만나 추궁하듯 캐 물어 꼭 설득당하고 싶은 맘 간절하다.


수도 없는 도전적 질문에 이미 시인은 여러 매체에서 공개적으로 공평의 이유를 밝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런 간절함은 아마도 그렇게 못하는 내가 몹시 싫기 때문 아닐까?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시인의 이런 '남이 못 가진 감각'을 간절히 사모하며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되질 않는다. 억지로 꾸역꾸역 구겨 넣는다고 된다면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만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님을 알기에 시인의 진실한 실천의 고백이 존경스럽다. 내 솔직한 속내를 털어내 히 비교해 본다.


나 남이 본 것 정도로는 양이 도무지 안 차고
나 남이 들었다는 소리 말고 또 다른 소리에 혹 하고
나 받은 사랑 넘치는 데도, 더 받아야 한다며 손 내밀고
나 남이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이 가졌지만
나 남이 있는 건 물론이고, 훨씬 더 갖게 하소서


나는 결코 남이 될 수없다. 그러기에 송명희 시인처럼 또한 당연히 될 순 없다. 하지만 나의 '따라 하기' 시(詩)는 이렇게 쓰이길 바라는 맘을 담아, 시인의 공평을 나의 버전으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 해 본다.


나 받은 재능 요만큼이나

나 가진 지식 대단치 않으나

나 이 정도 해낼 만큼만 건강하나

나 남이 없는 것 따로 가지진 못했으나

나 남이 도무지 못 믿는 것 믿을 수 있고

남이 힘들어하는 것 맡길 수 있는 분 있으니

남이 못 가진 것 갖게 한 공평을 신기하게 깨닫게 되었네

이렇게라도 따라 표현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하늘의 특별하고 공평한 사랑을 받았다며 저렇게 시를 쓰는 시인 송명희를 세상이 감당이나 할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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