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길
시각차이로 숙소에서 오래 쉬지는 못했다.
이곳에서 마스크 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첫째 날(5월 6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오전 9시 한국인 투어 가이드님을 만났다. 가이드님은 유학생으로 독일 프라임 대학에서 공부했고, 손녀 또래 딸이 있다 해서 설명도 잘해 주시고 친근감을 더 했다.
투어 목적지는 당일치기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서 1시간 반 가량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가는 동안 독일의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독일의 교육제도 등 유학생들에게 혜택이 좋고, 손주들에게도 독일에서 공부하면 좋다고 했다.
들녘에 포도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화이트와인, 리즐링(Riesling) 품종이 좋다고 했다.
하이델베르크 역에 도착, 분수대가 있는 마르크트 광장을 걸었다. 붉은색 돌담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이 정겹게 보였다.
먼저 들린 곳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이델베
르크 대학교. 1386년 설립,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중세유럽의 학문적 중심지의 대학교였다.
학교 광장에 새겨진 글들. '종교 개혁의 마틴 루터 95조 변론'과 나치 독일 정권 때 불온한 서적이
라고 해서 이곳에서 책을 불태워졌다고 한다. "한번 인쇄된 것은 영원히 세상에 속한다. 파괴할 권리 없다." 다시는 과오가 없기를 ,,,
중세 어둠의 장막 거둬낸 구텐베르크, 인쇄와 지식혁명,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성경과 지식을 독점하던 체계 무너 뜨림, 14c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프랑스혁명,,
구텐베르크에 대한 설명도 기록되어 있었다
대학 신관 입구에 "살아있는 정신에게 " 문구가 좋아서 얼른 적어 두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살아있는 히틀러에게" 살벌한 느낌까지, 독일 전쟁으로 이 학교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대학 안뜰에 있는 건물이 인상 깊었다. 붉은 사암으로 된 '마녀의 탑'이름만 들어도 무서웠다, 중세 때 마녀로 지목된 여인들은 재판을 받은 후 이곳에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학교 내에 그대로 있는 것은 전통의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손주들과 왕가의 도서관을 들려다 보았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멋진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누구일까?
전통이 오랜 학교라서 성직자, 철학자. 노벨상 수상자들도 많이 배출된 학교라고 했다.
이렇게 멋진 학교에 딸과 손주들이랑 함께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과 감사함이 우러나왔다. 아직 어린 손주들이지만 언젠가 또 이곳의 의미를 더 느끼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념품샵 잠깐 들렀다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이동했다.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들.
철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눈앞에 네카어강이 흐르고, 아름다운 풍경과 고요한 사색에 젖어드는 곳, 이곳에서 많은 철학자들 과테,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철학자들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위에서 에서 바라본 하이델
베르크의 빨간 지붕과 푸른 강은 물빛에 젖어 고요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아름다운 성이었다. 1255년 방어를 위한 요새로 만들어
졌지만, 이후 30년 종교전쟁, 2차 세계대전 등으로 훼손되었다가 복원되었다.
좌우로 이어진 상반된 프리디히 건물은 벽만 보아도 고풍스럽고 웅장했다. 지하에는 술 저장 창고,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큰 술통이었다. 병사들을 위한 술통이라고 했다. 피로와 위안을 주기 위한 포도주 통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배 고파질 시간이다. 성벽 사이를 지나 천천히 내려갔다. 가이드님은 양조장에서 직접 제조한 맥주가 맛있다고 야외 테이블 있는 곳을 권했다. 독일 사람들은 음식을 천천히 즐기면서 먹는다고 했다. 감자튀김, 스테이크 고기. 야채, 갓 만들어온 맥주가 매우 맛있었다. 독일사람들 틈에서 분위기를 느끼면서,,
프랑크푸르트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가이드님은 손주들에게 독일을 대표 것이 무엇일까?
1. 금융제도 2. 괴테 3. 신성로마제국 대관식이라고 했다. 세계 4대 혁명도 들려주셨다. 신석기 혁명(농사짓기). 인쇄술 혁명(글자를 찍어냄), 산업혁명(증기차), 아이티혁명
(첨단산업), 생명공학혁명(줄기세포)
손주들이 이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상관은 없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마지막 코스는 고딕양식의 성령대성당에 들렸다. 이곳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곳. 엄숙한 분위기였다. 2차 세계
대전 때 프랑크푸르트 도시가 완전 파괴 되었어도, 이 성당만은 살아남았다. 적국이라도 신성한 곳을 살려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행한 일이었다.
해가 뢰머광장을 지나 기울어지고 있었다. 목조 건물들 사이를 두고 구도심 광장이다. 이곳은 로마제국 때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곳이며 (뢰머가 로마)의 어원이라고 했다. 중세의 상인들이 머물던 곳, 대관식이 열리고 연회가 있었던 곳, 오래전 우리나라 축구선수 차범군 선수가 승리의 깃발을 들고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가이드님과 헤어지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누어 먹으며 뢰머광장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째 날이 저물고 있었다.
내일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