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현대의 도시(프랑크푸르트)

괴테의 생가를 찾아서

by 녹주고우

둘째 날(5월 7일)

1)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


프랑크푸르트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공룡들이 압도적이다. 영화 쥐라기

공원이 연상되었다. 공룡 이름을 외우고 있는 손주는 티라노사우르스는 육식을 좋아해서 용맹하다 했다. 어디에서 발견된 공룡들일까? 우리나라에도 공룡의 흔적은 있지만 이처럼 박물관을 통해서 거대한 화석 공룡을 본 적은 없다.


북극의 곰에서부터 각종 포유류, 조류, 곤충들까지 손주들의 관심사를 모았다. 매머드와 인간의 직립보행이 인상 깊었다. 인류의 진화를 생각해 보게 되지만, 지구상에서 인간은 거대 동물을 지배해 왔고, 지금도 위대하다.


2) 괴테광장


갤러리 매장에 사람들이 붐볐다. 이곳도 우리나라의 어버이날처럼 어머니 날이 있어서 꽃과 초콜릿 행사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일본식 우동과 김밥을 먹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전쟁을 겪었고,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렀을 만큼, 폐허 된 건물을 재건했다. 근검절약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나라였다.


괴테광장에 괴테 동상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동급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만큼 괴테는 독일의 주요 인물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괴테 하우스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거리에 베를린 장벽, 벽 돌 일부가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통일의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생가 박물관


'파우스트'가 생각났다. 인간 본성의 욕망과 지식의 탐구라는 철학적 요소가 깔려 있는 책이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대결 구도이다. 유혹의 세계를 경험하면서도 악마의 뜻에 넘어가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라도 타인을 위하는 삶이라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인가?

철학적인 물음의 있다. 선과 악, 욕망과 타협, 사랑과 구원이라는 깊은 사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괴테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매년 국제 도서전이 열린다는 프랑크 푸르트 괴테 생가를 찾았다.


"나는 1749년 8월 26일 정오. 종탑의 시계종이

12번 울릴 때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괴테 자서전 "시와 진실"


프랑크푸르트 도시가 2차 세계대전 때 폐허가 되었었고, 괴테가 살던 집도 온전할 리가 없었다. 이후 복원 되면서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박물관은 4층 건물이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생활공간이며, 가구, 책들과 그림, 난로 등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구들은 대부분 고풍스럽고 예스러웠다.


괴테의 아버지는 황실의 고위 관료였고, 어머니는 시장의 딸이었다. 이후 괴테도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부모님의 영향이었다고 본다.


1층은 식당과 주방이고, 2층은 응접실, 아마 가족행사나 손님맞이 장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악기와 사진, 그림들이 걸려 있다.


3층은 책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누나랑 인형극을 하며 놀았던 인형극장도 전시되어 있고, 그의 생애에 대하여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4층은 책상, 벽면에 여러 사진들, 초상화, 소묘 등이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글을 썼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떠나 아버지의 조언대로 법률을 공부했으나 결국 글을 쓰는 문필가가 되었다. 그는 한때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재상의 자리를 내려놓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괴테가 살았던 시기는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시민혁명 유럽은 격동의 시기 18세기 중후반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근세로의 방향은 괴테의 심간은 흔들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에 방문하게 되었다." 괴테는 어린 시절부터 로마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괴테는 대 문호 문학가이며 철학. 정치, 자연철학 등 다 방면에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박물관 기념샵에는 방문자 방명록이 있었다. 딸과 손주들, 할머니는 어설프게나마 친필로 괴테의 집을 방문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 줄씩 글을 남겼다. 손주들 글이 더 재밌다. "괴테집이 불이 나서 다시 지었지만 부잣집인 게 느껴져서 다행^^다음에 꼭 한번 더 와라!♡"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가족이 괴테 생가에서 한글로 글을 남긴 건 소중한 의미라고 생각했다. 기념샵에서 괴테 인형, 엽서를 다.


마무리

프랑크푸르트는 중세의 흔적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는 도시였다. EU가 있는 금융도시이며, 괴테가 있는 문학의 본고장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교한 끌림의 도시였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여행했고. 내일은 스위스로 간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요점 역사)

프랑크푸르트, 프랑크족의 나루터에서 유래

로마제국 시대부터 사람들 거주

9c부터 황제 선출 대관식

신성로마 제국 정치적 중심지

13c 상업과 무역 발달, 유럽 무역 거점

16c 종교개혁 루터파 영향

18c 독립적 자유도시

19c ~20c금융과 교통의 중심지 역할

2차 세계대전 때 역사적인 건물 심각한 파손, 이후 복원

현재 독일 금융중심지, 유럽중앙은행(ECB), 독일 증권 거래소 등 국제도시

괴테 하우스
괴테 생가 이정표
괴테기념품샵 방명록 기제
괴테 하우스 3층 서재
괴테 광장
거리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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