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킬링필드>
불과 50여 년 전 역사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요동 쳤던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시대(1975~79)
왓트마이 사원을 향했다. 당시 사람들도 이 길을 걸었다. 흙 담길 나뭇가지가 파르르 떤다, 이 나무들은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는 뜻하다.
왓트마이는 캄보디아가 겪은 참혹한 현대사를 직시하게 만들어 놓은 공간. 유골들이 안치되어 있고 수감자들의 감옥이었고, 처형되고 매장
되었던 곳. 지금은 관광지가 아니라 기억과 추모의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
4년 간 폴포트 정권(급진 공산주의)은 무고한 양민을 약 2백만 명을 학살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이다.(1863~1953) 이후 내전과 혼란이 이어진다. 캄보디아와 베트남과의 영토 분쟁도 잦았다. 국경지역에 베트남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군은 캄보디아 주민까지 학살 피해를 입혔다.
이에 격분한 크메르 루즈(급진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이 조정에 놀아나는 친미 롤 정권(1970)과 대립했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물러나자. 농민들과 폴포트는(급진 공산주의자) 쿠데타를 일으켜서 롤 정권을 무너뜨렸다.
폴포트(급진 공산주의)가 정권을 잡자, 프롬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시켰고, 사유재산, 종교까지 빼앗고, 폐지시켰다.
이 과정에서 롤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를 들어서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 노동자, 어린아이까지 인구의 4/1를 학살한 사건을 킬링필드(Killing Fieldgs)라고 한다.
킬링필드는 극단적인 이념과 독재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였다.
나는 아주 근간의 이런 사건을 보면서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홀로코스트)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미군정과 우익정권, 해방공간에서의 혼란기가 있었다. 무고한 양민 학살, 4.3 항쟁 등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까지 수많은 희생으로 정치적 변화를 이루어 냈던 일들을 떠 올렸다.
발길이 무거웠던 곳.
캄보디아 여행 중 찾았던 곳이다.
<크메르 제국>9c~15c
무덥고 습한 기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태양이 돌덩이를 데운다. 돌덩이 하나의 무게와, 몸 하나의 무게와 더한 무게를 들어 올린다. 사막보다 긴 왕개미들이 행렬이 이어진다. 가다가 쓰러지면 그 공간을 메우며 전진한다.
채석장에서 캐낸 돌덩이는 통나무로 굴리거나 수로로 이동했다. 돌덩이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돌덩이들이 쌓여서 몇 천 개, 몇 만 개의 돌 꽃으로 피어났다. 힌두교의 비슈니신과 한 몸이 된다. 신의 이름으로 돌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앙코르 와트가 건설되었다.
<앙코르 와트>
앙코르 와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된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건축물이다. 12c 초에 앙코르 왕조 중 가장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는 자신의 묘를 조성하기 위해 건립한 사원이었다.
사원의 건축물은 크메르인의 독자적인 문화와 우주관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힌두교 신앙과 부합하여지었지만, 이후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입구부터 넓게 뻗은 해자로 둘러 싸여 있다. 다리를 건너서 마주하는 사원은 웅장하고 신비롭다. 곳곳의 건축물이 위엄이 있어 보인다. 회랑 안쪽 벽면의 새겨진 부조만 따라가도 크메르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전쟁 장면은 자신의 업적을 치적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삼중구조의 5개의 탑 중 중앙탑은 메루산을 상징한다. 메루산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성스러운 산이라고 했다.
정글 숲에 묻혀 있던 이곳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1860년에 발견하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바이욘 사원>
어디 돌 꽃이 한 둘이더냐, 앙코르 와트 사원 주변에 또 다른 돌맹의 유적이다, 사방을 바라보는 거대한 불상들은 '앙코르의 미소'라고 부른다. 미소의 사원이라고 부르는 미소의 얼굴은 200 여개가 새겨져 있다.
사원 내부에 크메르 제국의 역사와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회랑의 물고기, 악어, 배, 참파군 등 전쟁의 모습까지 묘사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벽에 기대어 사진 찍기 좋은 포즈라서 딸과 찍은 사진을 지금도 추억하고 있다.
<따프롬사원>
영화 <툼 레이더> 촬영지로 알려져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사원에 들어갈수록 거대한 나무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 뿌리가 아슬아슬하게 벽과 지붕이 붕괴를 막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더러는 무너져 내린 건물 사이로 푸른 식물과 햇빛이 비치었다. 폐허 속에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위엄을 보는 듯했다.
앙코르의 돌 꽃 -
찬란한 돌 꽃이 피었네
밀림의 숲을 감싸 안고 무슨 꿈을 그토록 꾸고 있었나, 숨 막히는 불개미들의 행렬은 어느 시대의 왕조였나.
정교한 돌 날의 움직임
손끝에서 다듬어질 때
앙코르의 노을은 붉게 솟구쳐 올랐다.
회랑 부조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낯설지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노를 저었고, 물고기를 잡았고 천년의 강물은 흘러 왔다
찬란한 앙코르의 사원에서 그날의 일출은
장엄했다. 크메르인이여!
크메르인이여!
우렁찬 코끼리 테라스를 지나면서
감히 몽골을 제압하고, 참파를 무찌르고
앙코르의 눈부신 돌 꽃 사원 앞에서
크메르 제국의 모습을 보았다
크메르인 후손들이여!
흥망성쇠는 어느 시대에도 있는 법
조상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놀라울 따름이오!
앙코르의 돌 꽃 사원 아래에서
노래하는 크메르인 후손이여!
아리랑을 불러주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노래가 다시 문화의 꽃으로 융성하길
바라는 일이다.
앙코르의 돌 꽃 노을 앞에서 -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0년 1월 23~27일
작은 딸과 함께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 다녀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