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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un 23. 2023

인생은 곱셈이라죠?

 더 큰 세상과 만나기 위한 도전

성격유형이 ENTJ라 추진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에서 딱 한 가지 지지부진하게 남겨진 골칫덩어리가 있다.  

미련과 집착사이,  알 수 없는 애증의 관계,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바로 영어다. 


도대체 언제 끝을 낼건지?  아직 모른다. 

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영어는 한동안 포기상태였다. 

물론 새해가 되면 영어 공부가 목표이긴 했지만, 작심 1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늘 흐지부지됐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십 년을 붙잡고만 있었다. 

언제나 짝사랑이지만 내겐 넘사벽, 

콧대가 너무 높아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얄미운 놈이다.





30년 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 

그림처럼 펼쳐지는 창밖 풍경만 바라보며 퇴근 시간만 기다리던 철없던 신입 시절의 일이다.

키가 훤칠한 푸른 눈의 외국 남자가 흰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 모습이 창밖 멀리서 보였다. 

스크린 속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인공이 현실 세계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점점  클로즈업되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 분이 지난 후에 그 남자는 내 창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불안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Hi~~~ 

그는 빠른 속도로  블라 블라 블라......,

팝콘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 느낌.

시간은 정지된 채 그대로 얼음처럼 단단해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30년 전 그는 무슨 도움을 청하려고 왔었을까? 의문만 남겨 놓은 채 평생 찜찜함으로 남았다. 


호주 여행에서 맥주나 한잔하려고 들어가 주문을 잘못해 성인 7명이 어린이용 피자만 먹고 나왔던 기억,

입국심사 때 잘못한 것도 없이 벌벌 떨며 연신 '관광객, 관광객'만 외쳤던 기억,

영어는 늘 마음속에만 있었지! 갖은 수모와 아픈 기억만 남겼을 뿐이다. 


딸은 영어 통역사다. 

모르는 사람들은 딸에게 배우면 되지 않겠냐 묻는다. 

딸은 격려나 응원 대신 영어만 하면 동남아 발음이라며 웃으며 놀린다. 

매몰 비용에 빠지지 말고 그만 포기하고 다른 일에 열중하는 편이 낮지 않겠냐는 말이다.

영어를 향한 마음은 다큐처럼 진지했으나 실력은 개그처럼 웃기는 수준이다. 








본격적인 영어 공부는 3년 전, 스터디 파트너를 구한 후부터다.

자료는 내가 준비할 테니 같이 공부하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좋다 했다. 

단, 우리는 노예계약을 맺어 절대 공부를 중단하거나 쉬지 않기로 약속하고 시작했다.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매주 A4 한 장에, 생활영어 4줄, 패턴 영어 10줄, 시사영어 2줄 정도를 작성해 공유하고 일주일 동안 외워서 테스트하는 거다.  그렇게 하다 보니 문장의 구조나 패턴이 좀 늘었다.

그녀와 나, 모두 결과에 만족한다.

가벼운 생활영어는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영어를 붙잡고 있는 이유는 자유로운 소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어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며 여행을 다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심정으로 오늘도 한 시간 동안 물을 열심히 주었다.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이나 소통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넷플릭스 영화를 보며 가끔 알아듣는 문장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즐겁다.


누군가 인생은 곱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0이면 아무리 많은 기회가 오더라도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다는 이야기다.

나는 영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지고 싶다.

늦었어도 느려도 꾸준히 해보고 싶어 오늘도 중얼중얼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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