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안 걷던 직장인
어려서부터 몸을 써서 움직이는 것을 참 싫어했다.
줄넘기, 고무줄놀이보다는 인형놀이와 공기놀이를 더 좋아했다.
주로 앉은자리에서 꼼지락거리는 일이나, 취미만을 즐기며 살아왔다.
흰 얼굴에 선명한 주근깨, 비쩍 마른 몸, 사진 속 어릴 적 내 모습이다.
아버지는 월급날이면 돼지고기를 한 근 사와 한 시간 이상을 푹 삶으셨다.
냄새가 싫어 연신 구역질을 했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입 안에 넣어 주셨다.
억지로 먹고 배탈이 나서 며칠 고생을 하고 난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고 살았다. 늘 미덥지 않아 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시집가던 날, 눈이 뻘게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잔병치레를 해가며 그럭저럭 부실한 몸으로 시집도 가고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을 해왔다.
도시인 하루 평균 4,500~5,000보 정도 걷는다고 하는데 직장을 다닐 때도 차로 이동하다 보니 3,000 보도 채 안 걸었다.
퇴직하고 6개월 만에 몸무게가 8kg나 늘었다.
맞는 옷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붓고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팠다. 미니멀을 한다면서 큰 옷을 사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기 위해 퇴직을 했는데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이다.
밥 먹고 운동하는 백수
아주 가끔, 봄에는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고, 일 년에 한두 차례 낮은 산에도 갔지만 중턱에서 다시 돌아왔다.
건강검진 때 의사가 몸에 뼈와 지방만 있다고 나무라는데 부끄러웠지만 그뿐이었다.
평생을 운동이란 걸 해보지 않았던 탓에 피트니스센터로 가기까지는 마음의 진입장벽이 너무 컸다.
반강제로 날 끌고 간 건 딸이었다.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피트니스센터까지 가는데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빠른 비트의 음악이 시끄럽게 울려 정신이 멍한 기분으로 이끌려 간 센터는 아주 낯설었다.
몸 좋은 젊은 친구들이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머리 하얀 나이 지긋한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첫날 어설픈 스트레칭을 하고 몇 개의 기구 사용법 설명을 듣고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날 온몸에 파스를 붙였고 2~3일은 근육통에 신음하며 괜히 시작했다고 후회했었다.
이제 3주가 지났다.
늘기만 하던 몸무게가 1kg 빠졌고 근육통도 가라앉았다.
겨우 1kg 빠졌는데도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을 얻는 데 충분했다.
지금은 운동을 안 간 날이면 뭔가 안 한 듯한 기분에 밤늦게라도 가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다.
건강은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게 된다.
예전에 나는 밥 먹고, 술 마시고, TV 볼 시간은 있어도 운동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은 돈 많고, 시간 많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여겼다.
퇴직하고 그냥 뭔가 행복해질 거라고 착각했었다.
어떤 신기루 같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