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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ul 15. 2023

백수 된 김에 몸짱이나 돼볼까?

좀처럼 안 걷던 직장인


어려서부터 몸을 써서 움직이는 것을 참 싫어했다.

줄넘기, 고무줄놀이보다는 인형놀이와 공기놀이를 더 좋아했다. 

주로 앉은자리에서 꼼지락거리는 일이나, 취미만을 즐기며 살아왔다.

흰 얼굴에 선명한 주근깨, 비쩍 마른 몸, 사진 속 어릴 적 내 모습이다. 


아버지는 월급날이면 돼지고기를  한 근 사와 한 시간 이상을 푹 삶으셨다.

냄새가 싫어 연신 구역질을 했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입 안에 넣어 주셨다.

억지로 먹고 배탈이 나서 며칠 고생을 하고 난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고 살았다.  늘 미덥지 않아 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시집가던 날, 눈이 뻘게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잔병치레를 해가며 그럭저럭 부실한 몸으로 시집도 가고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을 해왔다. 


도시인 하루 평균 4,500~5,000보 정도 걷는다고 하는데 직장을 다닐 때도 차로 이동하다 보니 3,000 보도 채 안 걸었다. 

퇴직하고 6개월 만에  몸무게가 8kg나 늘었다.

맞는 옷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붓고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팠다. 미니멀을 한다면서 큰 옷을 사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기 위해 퇴직을 했는데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이다.



밥 먹고 운동하는 백수


아주 가끔, 봄에는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고, 일 년에 한두 차례 낮은 산에도 갔지만 중턱에서 다시 돌아왔다. 

건강검진 때 의사가 몸에 뼈와 지방만 있다고 나무라는데 부끄러웠지만 그뿐이었다. 

평생을 운동이란 걸 해보지 않았던 탓에 피트니스센터로 가기까지는 마음의 진입장벽이 너무 컸다. 

반강제로 날 끌고 간 건 딸이었다.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피트니스센터까지 가는데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빠른 비트의  음악이 시끄럽게 울려 정신이 멍한 기분으로 이끌려 간 센터는 아주 낯설었다.

몸 좋은 젊은 친구들이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머리 하얀 나이 지긋한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첫날 어설픈 스트레칭을 하고 몇 개의 기구 사용법 설명을 듣고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날 온몸에 파스를 붙였고 2~3일은 근육통에 신음하며 괜히 시작했다고 후회했었다. 

 


이제 3주가 지났다. 

늘기만 하던 몸무게가 1kg 빠졌고 근육통도 가라앉았다.  

겨우 1kg 빠졌는데도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을 얻는 데 충분했다. 

지금은 운동을 안 간 날이면 뭔가 안 한 듯한 기분에 밤늦게라도 가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다.   


건강은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게 된다. 

예전에 나는 밥 먹고, 술 마시고, TV 볼 시간은 있어도 운동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은 돈 많고, 시간 많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여겼다.


얼마 전 유영만 교수님이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강의를 설거지하면서 우연히 들었다.  한 인간이 일생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통증을 느끼면서 운동을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밥 먹듯이 운동을 하고 운동 안 한 날은 밥 먹지 말라는 말에 웃었지만, 왠지 내 이야기 같았다.


운동을 통해서 힘든 순간을 버티면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지만 병약한 몸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섬뜩해졌다.  


퇴직하고 그냥 뭔가 행복해질 거라고 착각했었다. 

어떤 신기루 같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요즘 행복은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과 변화에서 온다는 것을 운동으로 배우게 되었다. 


밥 먹었으니 시간 많은 백수는 오늘도 운동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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