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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Aug 14. 2024

삼시 세 끼는 창작의 영역이다

삼시세끼의 걱정

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아침! 잠에서 깨면서부터 아침은 뭐 해 먹을까가 고민이다. 일어나면서부터 끼니 걱정이라니 나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시간에 쫓겨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잦은 야근으로 저녁도 외식으로 대체하고 주말이면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다가 오후 나절에 일어나 배달 음식을 먹던 나였다. 퇴직하면 건강한 밥상을 차리며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


나와 남편이 퇴직하고 딸아이도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삼식이가 셋이나 있다. 함께 먹어 즐겁기도 하지만 매번 무얼 먹어야 하나가 고민이다. 나가서 먹는 음식만 물리는 줄 알았는데 비슷한 음식만 먹다 보면 집밥도 질린다. 몸을 일으켜 냉장고 문을 열고, 어젯밤 남은 반찬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요 며칠 덥다고 김치볶음밥, 콩국수, 가지 덮밥 등 간단한 음식만 해 먹었더니 먹을만한 것이 없다. 


요즘 부쩍 어지럽고 기운이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남편도 툭하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노래한다. 50이 넘은 사람들은 한 군데씩 고장 안 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불같은 날씨에 완전히 제압을 당해 정신을 못 차리며 지내고 있다. 초복, 중복이 다 지나도록 보신 한 번 하지 못해 그런 거 아닌가 싶어 이번 말복엔 삼계탕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삼시 세끼를 차리는 것은 매일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이며 가족 건강과 직결되어 비장한 책임감까지 느끼는 일이다.



복날에 삼계탕이지

아침부터 동네 마트에 가서 신선한 닭과 인삼, 대추, 마늘, 녹두를 샀다. 10시도 안 되었는데 햇볕이 맹렬한 기세로 내리쫴 머리가 뜨겁다. 나무 위 매미들이 목청이 터지라 울고 있는 걸 보니 저들도 덥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오늘도 엄청 더울 것 같다. 마트에서 산 비비고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집에 오자마자 닭을 씻어 찹쌀과 인삼, 대추, 마늘을 넣었다. 인삼을 듬뿍 넣어서 제대로 된 보양식을 만들 계획이다. "인삼의 쌉싸름한 맛이 국물에 진하게 배어들면, 없던 힘도 생기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가스레인지 위에 솥을 올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압력밥솥에서 칙칙칙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신나게 들린다. 뜸 들이면서 뿜어져 나오는 향이 주방에서 거실까지 진하게 퍼져 나간다. 딸아이가 "뭔 남새야?" 미심쩍은 얼굴로 묻는다. "조금만 기다려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삼계탕 맛을 보게 될 테니" 밥솥의 김을 빼며 자신만만하게 솥뚜껑을 열었다. 잘 익은 닭고기와 진한 국물, 그리고 푹 물러진 인삼이 제대로 완성된 것 같았다국물과 속이 알차게 채워진 삼계탕을 큰 대접에 담아 식탁에 차렸다.



요리는 창작의 영역

첫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아이 써!" 딸아이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완전 한약인데!" 나도 맛을 보니 인삼의 강한 향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몸에 좋은 맛이라고 달래 보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숟가락을 넘길 때마다 인삼의 쓴맛이 강해 먹기가 힘들었다. 삼계탕이 아니라 이건 인삼탕이었다.


남편과 딸은 미간을 찌푸리며 억지로 삼계탕을 삼키고 있었다. 오전 내내 열심히 끓인 시간이 허무하게 끝나는 느낌과 퇴직하고 1년이 넘도록 살림했는데 아직도 어설픈 나에게 화가 났다. 어쩔 수 없이 닭고기만 골라 먹으며 삼계탕 점심은 끝이 났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창조의 영역이다. 신선한 재료, 불의 온도, 양념의 배합, 그리고 손끝의 감각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예술의 영역이다. 요리는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순간을 함께한 이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요리가 서툴고 힘들다. 삼계탕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내년 복날에는 가족들 앞에 제대로 된 삼계탕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먹어준 가족의 건강을 빌어본다. 아직도 더위가 고개를 잔뜩 치켜들고 있지만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더위도 좀 꺾이려나 싶다. 그리고 다음 달엔 가을이 오겠지. 가을이란 단어를 생각만 해도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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