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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실패에도 글을 쓰는 이유

by 이소희

솔직히 말해, 조금은 기대했었다. 메일을 읽은 누군가가 ‘함께 책을 만들자’고 답장을 보내주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그런 상상을 했다. 투고 메일을 보내고 나서, 출간 일정과 서점에 걸릴 표지, 작가 소개란에 적힐 내 이름까지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을 잔뜩 마셨던 셈이다.

현실은 냉정했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간혹 열람이 되더라도 답장은 없었다. 드물게 도착한 메일에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짧은 한 줄짜리 답장만 남아 있었다. 출판사 입장에선 정중한 표현이었겠지만,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 글이 부족하다는 말이라면 차라리 납득할 수 있었다. 문제를 알면 다시 고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연이 아니다’라는 모호한 답장 앞에서는 다른 시도를 해볼 방법이 없었다. 괜한 욕심을 부려 마음만 상해 버린 것 같았다. 한 번의 거절만으로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조차 잦아들었다.


국내에서 신인 작가가 투고를 통해 출간까지 이어질 확률은 5% 미만이라고 한다. 그 수치가 이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보여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담담한 마음으로 원고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수정을 하고 제목도 바꿨다. ‘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그래도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다시 50여 군데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몇몇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 곳은 책 100권 선구매 조건을, 또 다른 곳은 예약판매 제안을 했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검토를 중단했고, 그러던 중 한 작은 출판사에서 미팅 제안을 받았다. 잃었던 희망이 다시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그날 밤,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내 글이 세상에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팅이 이어질수록 대화가 이상하게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대표의 말은 내 에세이에 담긴 진심보다는 ‘지금 잘 팔리는 형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말은 내 글을 함께 만들어가는 제안이 아니라,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춰달라는 이야기였다.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1장을 다시 쓰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표현을 고치고, 구조를 바꾸고, 어조를 조정했다. 수정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문장을 지워내고 다시 쓰는 동안, 내 글은 점점 낯설어졌다. 어느새 나는 내가 쓴 문장을 버리고, 그들이 원하는 문장을 쓰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이 아니었다. 결국 정중히 계약을 거절하는 메일을 보내고 노트북을 덮었다. 억지로 꿰맞춘 글에 내 이름을 얹고 싶지 않았다.

나의 첫 출판 도전은 그렇게 끝났다. 꿈꾸었던 인연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나는 전자책으로 첫 책을 냈다. 화려한 데뷔도, 서점 진열대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지만 그냥 나의 글이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책이 목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썼고, 쓰다 보니 책을 꿈꾸게 된 것뿐이었다. 그래서 투고에 실패했어도 글을 멈출 수는 없었다. 출판이라는 결과가 전부였다면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글은 출판사에 닿지 않아도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쓰던 그 자리로. 결국 책은 하나의 결과일 뿐, 이유가 아니었다. 이유는 언제나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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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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