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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원으로 시작한 1인 출판사

by 이소희


지난주에 공직을 떠나 1인 출판사를 차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름만 거창한 ‘출판사 대표’이지, 실상은 노트북 하나로 모든 일을 해내는 자유로운 창작자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무실은 어디 얻었어요?” “돈은 얼마나 들었어요?” “혼자서 그게 가능해요?” 마치 ‘출판’이라는 건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필요한 성역처럼 여겨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가진 전부라곤 낡은 노트북 한 대와 ‘한번 끝까지 해보자’는 무모한 마음뿐이라는 것을.


출판사의 공식 주소는 ‘내 집’이었다. 사무실을 임대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원했는데, 출판사마저 미니멀해진 셈이었다. 번듯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 일할 만한 작은 공간으로도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아마존이 제프 베조스의 창고에서 시작되었듯, 많은 창조의 순간은 의외로 가장 초라한 공간에서 탄생한다. 나는 내 방 한편, 창가 옆 책상에 노트북을 두고 그곳을 ‘비와나무출판’의 사무실로 삼았다. 출판사 신고 시 자택 주소로 등록이 가능했고, 서류만 갖추면 정식 사업장으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고와 교정본은 물리적인 책장 대신 노트북 안에 저장했다. 이 작은 기계가 곧 나의 작업장이자 세상과의 접점이었다. 가장 작고 협소한 이 공간에서, 나는 매일 문장을 다듬으며 출판사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설립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법인이 아닌 개인 사업자 형태의 1인 출판사는 정부 24를 통해 출판사 신고를 하고, 홈택스로 사업자등록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면 된다. 이 모든 행정 절차에 들어간 비용은 단 하나, 등록면허세 약 3만 원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그 돈이 출판사 설립의 전부였다.


진짜 고민은 ‘인쇄’였지만, 이 역시 POD(Print On Demand, 주문형 인쇄) 시스템이 해결해 주었다. 책이 주문될 때마다 1권씩 인쇄되는 구조 덕분에, 나는 초기 인쇄비를 단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책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다. 재고도, 창고도 필요 없는 구조다.


예전엔 디자이너와 교정자가 필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모든 과정을 외주 없이 직접 진행했다. 표지는 캔바(Canva)라는 온라인 디자인 툴로 만들었다. 템플릿을 수정하고, 색과 폰트를 바꾸며 내 책에 어울리는 표지를 완성했다. 내지 본문은 익숙한 아래한글로 작업했다. 저작권 걱정 없는 무료 서체인 코펍체를 사용해 단정함을 더했다.


ISBN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이트에서 무료로 발급받았다. 파일을 업로드할 때마다 오류 메시지를 만났고, 해상도나 여백 규정은 처음엔 너무 낯설어 몇 번이고 다시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행착오가 작은 공부가 되었고,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구조를 몸으로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혼자 처리하다 보니 결정과 수정은 누구보다 빠르고 유연했다.


이제 출판은 자본보다 꾸준히 쓰는 사람의 집중력이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걸 몸소 배웠다. ‘비와나무출판’을 세운 건 단지 책을 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누가 만들어주지 않아도, 언제든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구조를 스스로 갖추기 위해서였다. 출판사는 나에게 사업체가 아니라, 글 쓰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책을 낸다는 건 나의 가장 깊은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용기다. 느리고 번거롭고 외로운 과정이지만, 그 침묵 끝에 비로소 나는 작가로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백수에서 대표가 되었지만, 이 일로 돈을 벌진 못했다. 대신 그 빈자리를 매일 쓰는 일로 채워가고 있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출판사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한 사람의 작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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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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