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완성하면, 그다음은 책이 세상과 연결되는 행정의 첫 단계를 넘어야 한다. 바로 ISBN. 숫자 몇 자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국가·발행자·판본 같은 책의 신분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출판사 신고까지 마친 나에게 ISBN은 “이제 당신의 책은 공식적으로 존재합니다”라고 알려주는 작은 승인처럼 느껴진다.
ISBN을 받으려면 먼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서지표준센터에서 발행자 번호(Publisher Code)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번호가 출판사의 고유번호다. 이후 ISBN/ISSN 센터에서 도서명, 저자명, 판형, 제본 방식 등을 입력하고 표지 파일까지 업로드하면 된다.
그다음은 이 책을 독자에게 어떻게 건넬지 선택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초판을 수백 부씩 찍어두는 방식이 흔했지만, 무명작가나 1인 출판사에게 재고는 단순한 ‘박스 몇 개’가 아니다. 돈이고, 공간이고, 압박이다. 출판을 해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책이 안 팔리면, 집이 출판사가 아니라 물류센터가 된다.”
“엘리베이터 없는 집은 더 문제다. 박스는 진짜 무겁다.”
초판 300부만 찍어도 집은 금세 창고가 되고, 방 하나가 점령당하기도 한다. 보관할 곳이 없으면 창고 비용이 들고, 반품이 오면 다시 박스를 옮겨야 한다. 판매가 더디면 박스는 존재 자체가 걱정덩어리가 된다. 재고는 곧 비용이 된다.
그래서 나는 POD(Print On Demand), 즉 주문형 인쇄 방식을 선택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인쇄하는 구조라 재고 부담이 없고, 초판 인쇄비가 들지 않는 점이 큰 장점이다. POD 플랫폼에 표지 PDF와 내지 PDF를 업로드하고 종이·제본·판형을 선택해 시안을 승인하면, 플랫폼이 주요 온라인 서점과 DB 연동까지 처리해 준다. 이후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제작·포장·배송이 이루어진다. 재고 스트레스를 피하면서 출판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POD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우선 권당 단가가 높다. 소량 인쇄라 책 한 권 제작비가 높고, 그래서 정가를 너무 낮출 수 없다. 품질 편차도 있다. 표지 색이 화면보다 옅게 나오거나, 본문 잉크 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후기는 POD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다. 인쇄가 이루어지는 프린터와 공장에 따라 결과물이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책’이니 작은 차이에도 예민해지기 쉽다.
배송 속도도 약점이다. POD는 주문 후 제작–검수–포장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재고 도서처럼 당일 출고가 어렵다. 그래서 “선물용으로 주문했는데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독자 피드백이 종종 나온다. 또한 오프라인 서점 진열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오프라인 서점은 재고 기반 시스템이기 때문에 POD 책과 방식이 맞지 않는다.
이런 단점들을 알고도 POD가 1인 출판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재고라는 덫에 걸리지 않고 꾸준히 책을 만들 수 있다. 박스를 끌어안고 살 필요가 없으니 글과 기획, 독자와의 소통에 에너지를 더 쓸 수 있다.
전통적인 출판 방식에서는 배본사를 통해 유통을 확보하지만, 1인 출판사에게 이 과정은 또 하나의 사업을 시작하는 일과 같다. 다행히 POD 플랫폼은 온라인 서점 입점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내가 각각의 서점에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출판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출판의 마지막 단계는 결국 홍보다. 책이 서점에 올라갔다고 저절로 팔리지는 않는다. 독자에게 닿을 창구를 만드는 것도, 책을 소개하는 것도, 홍보 전략을 짜는 것도 모두 내 몫이다. 책에 사용된 이미지와 폰트의 상업적 라이선스 확인 역시 출판사 대표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
ISBN 발급부터 POD 제작까지, 책이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의 여정은 생각보다 적지 않은 책임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책이 완성된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책을 끝까지 책임지는 제작자로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