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짓는 종이의 집
내가 직접 책을 만들어보니 글쓰기와 책 만들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책을 만들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책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에디터도, 디자이너도 없이 혼자 책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관련 지식은 나에게 곧 생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행히 모대학교 책 만들기 과정을 통해 이 막막한 과정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책은 단순히 '글 꾸러미'가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하나의 건축물, 종이의 집과 같다. 처음 책을 내는 이들에게 내가 배운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책의 7가지 비밀: 초보자가 놓치는 종이의 건축학
흔히 책이라고 하면 표지와 안에 담긴 글을 떠올리지만, 책을 '제작'하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작은 부속품과 그 배열의 규칙을 만나게 된다. 편집자 없이 홀로 이 일을 하는 초보 출판업자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책의 7가지 기본 뼈대를 공개한다.
1. 표지 : 책의 얼굴. 앞표지, 뒤표지, 그리고 그 둘을 잇는 등(Spine)으로 구성된다. 표지의 디자인, 폰트, 후가공 방식이 책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2. 면지 : 표지와 내지를 연결하는 종이. 책의 내구성을 높이는 역할과 동시에 심미적인 역할을 한다.
3. 속표지 : 표지를 넘겨 가장 먼저 보이는 페이지. 보통 책의 제목만 간단히 인쇄되어 독자가 곧 본문에 진입할 것임을 예고한다.
4. 표제지 : 책의 정식 제목, 부제, 저자명, 출판사명이 모두 들어가는 페이지. 속표지보다 더 공식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5. 도비라 : 각 장이나 큰 섹션이 시작될 때 등장하는 페이지. 독자에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내용을 맞이하게 하는 일종의 '문' 역할을 한다. 나는 이 도비라 디자인에 작은 심벌이나 인용구를 넣어 변화를 주려고 애썼다.
6. 본문 : 드디어 작가(나)의 글이 펼쳐지는 부분.
7. 판권지 : 책의 신분증. 제목, 저자, 발행인, 발행처(출판사), 발행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ISBN(국제표준도서번호)과 정가, 저작권 표시 등이 명시된다. 보통 책의 맨 뒷부분에 위치하여 이 책에 대한 모든 공식 기록을 담는다.
제작 전 필수 체크리스트
책의 구성 요소를 알았다면, 이제 실제 인쇄를 위해 수치로 결정해야 할 '기술적'인 단계에 진입한다.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없는 1인 출판업자에게 이 결정들은 견적과 제작물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생존 요소다.
1. 제작의 첫 단추: 판형(책 사이즈)의 결정
책의 크기, 즉 판형은 인쇄 단가와 독자의 휴대성을 모두 결정한다. 이 판형은 보통 종이 원단을 몇 번 접어 몇 쪽이 나오는지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1인 출판사가 알아야 할 가장 흔한 판형은 다음과 같다.
- 46판 (127 * 188mm ): 일반도서, 시, 에세이에 적합한 휴대성 최고의 사이즈
- A5 (148 * 210mm): 일반도서, 소설, 에세이의 표준. 가장 보편적이고 경제적인 사이즈다.
- B5 (182 * 257mm): 문제지, 잡지 등 넓은 판형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된다.
- A4 (210 * 297mm): 문제지, 잡지 등 가장 큰 사이즈.
책은 대중적인 판형을 선택해야 비용이 절감된다. 희귀한 판형은 디자인은 독특할지 몰라도 제작 단가가 비싸진다. 내 책 <슬니멀라이프>는 46판(127x188mm)을 선택했다. 이 사이즈는 독자들이 가방에 쏙 넣어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고 비용이 저렴해서 독자들의 구매가격까지 생각했다. 휴대성과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었다.
2. 레이아웃의 기본: 여백과 쪽수
레이아웃은 독자의 가독성을 보장하는 규칙이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글자가 책에 파묻히거나 잘려나가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재단 여백 : 인쇄 후 종이를 자를 때 오차가 발생하더라도 표지나 내지 배경이 깔끔하게 잘리도록 사방 3mm의 재단 여백은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본문 여백: 책을 펼쳤을 때 안쪽 여백이 너무 좁으면 글이 책등(Spine) 쪽으로 빨려 들어가 읽기 어렵다. 나는 독자가 책을 편안하게 펼치고 읽을 수 있도록 안쪽 여백과 바깥쪽 여백을 섬세하게 조정해야 한다.
3. 가장 까다로운 계산: 책등(Spine) 두께 확보
표지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책 등 두께를 확정해야 한다. 책 등 두께가 틀리면 표지가 울거나 책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끔찍한 일이 생긴다. 책 등 두께는 총 페이지 수와 선택한 내지 종이의 평량(두께)에 의해 결정된다.
1인 출판사는 복잡한 계산식에 시간을 쏟기보다, POD 플랫폼이 제공하는 '책등 자동 계산기'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고 효율적이다. 내지 종류와 최종 쪽수만 입력하면 두께가 자동으로 계산된다.
홀로 책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인테리어 디자이너, 목수, 자재 관리자를 모두 겸하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이론이 현실적인 제작 과정으로 이어질 때, 드디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친 단단한 '책'이 되어간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