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출간되면 종이책을 받아보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책을 손에 쥔 순간까지는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다. 어느 정도는 책이 팔리고, 곧 ‘작가’라는 이름이 나에게도 붙을 줄 알았다. 적어도 누군가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어딘가에서 첫 주문이 들어오고, SNS에는 누군가 올린 인증샷이 몇개 쯤 올라올 거라고 어설픈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책은 팔리지 않았다. 판매 실적은 0에 가까웠고, 결국 내 책을 나만 사서 보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힘들고 지난했지만, 책이 세상에 나온다고 해서 그 열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무명작가의 책을 누가 굳이 사서 읽어주겠는가.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베스트셀러나 이미 유명한 작가의 책은 사봤지만, 검색도 안 되는 초보 작가의 책을 사본 적은 거의 없었다.
더욱이 지금 출판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도 평균적으로 1년에 4권도 채 읽지 않는다. 독서량이 줄어든 만큼 독자의 관심은 다른 콘텐츠로 이동했다.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이 20분 남짓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동영상 플랫폼과 웹콘텐츠에서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니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 권의 책이 독자의 눈에 들어올 확률은 생각보다 훨씬 낮다.
실제 내 책 판매 기록은 참담했다. 출간 첫 달 판매량 20부. 편집, 교정, 디자인, ISBN, 유통 등록까지 온갖 과정을 거쳤는데 팔린 건 겨우 20권이었다. 이것도 거의 지인이 사준 숫자다. 그런데 여기서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적게 팔린 것도 문제지만, 팔려도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구조다.
출판사마다 수수료 구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온라인 서점과 유통 대행 비용을 제하고 나면 작가에게 돌아오는 몫은 크지 않다. POD 방식은 초기 비용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제작비가 권당 책정되기 때문에 한 권이 팔렸을 때 남는 금액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초보 출판사가 POD를 선택하면 실질적인 수익 구조는 더 얇아진다. 나 역시 POD 제작비까지 빠지고 나니 책 한 권에서 얻는 수익은 편의점 삼각김밥 한 개 정도에 불과하다. 판매 부진이 실망스러웠다면, ‘팔려도 버틸 수 없는 구조’는 그보다 더 뼈아프다.
여기에 POD의 구조적 한계도 있었다. 초보 출판사는 재고 부담을 피하기 위해 POD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POD 책은 오프라인 서점 비치가 불가능하고, 유통사에서도 메인 노출 우선순위가 낮다. 독자가 우연히 발견할 확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세상에 나왔지만, 사실상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요즘 독자 구매 패턴도 판매량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제 독자들은 우연히 발견한 책을 사지 않는다. 대부분은 SNS나 유튜브, 블로그에서 이름을 여러 번 본 책을 구매한다. 검색되지 않는 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책이 된다. 책을 처음 보자마자 바로 구매하는 독자는 극소수다. 그러니 무명작가의 첫 책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닿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돌이켜보면, 출간을 앞두고 나는 작은 착시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책만 나오면 뭔가 달라질 것 같고, 사람들도 축하해 주고, SNS 팔로워도 조금은 늘 것 같고, 지인들도 인증샷 하나쯤은 올려줄 것만 같았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출간은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결과물이 조용히 세상에 추가되는 일일 뿐이다.
출간은 끝이 아니라 시동 버튼을 눌러야 할 시점이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검색창에 내 책 제목을 치지 않는다. 작가인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독자를 찾고, 책의 내용을 블로그와 SNS에서 재가공하고, 서평단을 모집하고, 콘텐츠를 만들며 책을 다시 소개하는 일. 초보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책을 시장에 연결시키는 1인 마케터가 되어야 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그리고 콘텐츠 경쟁이 영상 중심으로 재편된 시대. 그럼에도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면, ‘쓰기 + 마케팅’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