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을 마치고 인터넷 서점을 방문했다. 검색창에 조심스럽게 책 제목을 쳤더니, 정말로 내 책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쓴 책이 다른 책들과 나란히 검색 결과에 나온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다. ‘책은 내도 잘 안 팔린다’는 말은 이미 먼저 책을 낸 작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몇 부가 나가느냐’ 같은 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내 책이 뜬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그런데 책이 나온 뒤 세상은 조용했다.
책 냈다고 좋아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대기업 삼성에서도 신제품 갤럭시폰이 나오면 광고를 하는 판에, 무명의 작가가 책을 냈다고 누가 알아줄까. 어쨌든 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큼은 알려야 했다. 평생 공무원으로만 살아온 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판다’는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민원은 처리해 봤고 정책을 설명한 적은 많았지만, 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홍보하는 일은 정말 낯설었다. “이 책이 이런 분들께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말해야 했다. 어떻게 낯간지럽게 내 책을 내가 자랑할 수 있을까. ‘아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다가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SNS 계정은 거의 활동이 없던 상태였다. 인스타그램은 계정만 있고, 페이스북은 직장을 그만둔 뒤로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그나마 브런치와 블로그에 가끔 글을 올리는 정도였다. 글을 취미로 쓰는 게 아닌 이상, 이제는 SNS를 해야 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계정들에는 과거의 흔적만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서평단 모집 공고 한 줄을 쓰기 위해 꼬박 하루를 고민했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여러 번 고치고 지우면서, 과연 내 홍보 글에 누가 귀 기울여줄까 하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거의 기절 상태였던 내 계정에 서평단 모집 글을 올렸다.
글은 올려놨는데, 아무도 신청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 그럼 그냥 조용히 글을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자.’라는 비겁한 시나리오까지 머릿속에 그려뒀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자기 책을 홍보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겪는 공포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면서 하나둘 서평단 신청이 들어왔고, 결국 열여섯 명이 모였다. 자랑할 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무명의 작가 책을 읽어보겠다고 신청해 준 사람들이라 그저 고마웠다. 열여섯 분 모두에게 책을 보냈다. 택배 상자를 꺼내놓고 이름과 주소를 하나씩 써 내려가며 내 손으로 직접 책을 포장했다. 한 권, 한 권 책을 넣어가며 이 책들이 그분들께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상상했다. 이분들이 내 책의 첫 독자라고 생각하니 고맙고도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혹시 책을 읽고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자꾸 고개를 들었다.
책을 보내고 며칠이 지나자 서평단 글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으로 정성껏 써준 서평 덕분에 책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팔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지인들도 책을 사서 봤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어느 도서관에서는 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소식지에 실어주었다. 이 역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동시에 책임감도 생겼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좋은 글을, 좋은 책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 서평단에 지원해 준 열여섯 분, 소식지 한 구석을 내준 도서관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다음 책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야 한다. 책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은, 결국 더 진심으로 책을 쓰겠다는 약속을 다시 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