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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적자' 출판사의 '흑자' 낭만이야기

by 이소희

지난 5월에 출판사를 차리고 내가 쓴 글을 모아 인생 첫 책을 냈다. 그리고 7개월 정도 팔린 걸 정산해서 받은 금액은, 알바 하루치도 안 되는 돈이었다. 이걸 수익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마음과, “그래도 이만큼은 누군가가 내 책을 읽어 주었다는 고마움”이 동시에 들었다.


책이 처음 집으로 도착하던 날,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모니터 속 이야기들이 박스 안에서 풍겨 나오는 갓 인쇄된 새 책의 냄새로 내 마음을 심쿵하게 했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커터칼을 찾아 테이프를 뜯어냈다. 첫 책 한 권을 꺼내 표지를 손으로 한 번 쓸어 보았다. ‘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알바 하루치도 안 되는 수익이었지만, 정말 신기하고 가슴 벅찼던 건 따로 있었다. 내 책을 읽고,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나 직장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네 책 읽었어! 너무 좋더라”, “덕분에 따뜻한 위로를 받았어” 같은 메시지를 받으면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인연들이 책 한 권으로 다시 이어지는 귀한 경험을 했다.


다행히 직장 다니면서 모아 둔 돈이 조금 있고, 크진 않아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연금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 1인 출판사는 나의 고급진 취미와 일 사이 어딘가에 있다. 생활비를 책임지는 직업이라기보다, 내 마음 한켠을 붙잡고 있는 작은 출판 놀이터에 가깝다. 그리고 연말인 지금, 나는 내년도 책 작업에 또다시 정신이 없다. 이번에는 내가 직장 생활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실질적인 업무 노하우와 커리어 인사이트를 꾹꾹 눌러 담은 실전 에세이를 준비 중이다. 선배로서 후배들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다음 책을 만드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


요즘은 TV만 켜면 나오는 대세 배우 박정민이 출판사 ‘무제’를 차려 화제다. 그는 방송에서 배우로 번 돈으로 출판사를 돌린다고 했다. 상수 근처에 작은 책방을 열고, 그 인연으로 ‘무제’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자신이 쓰거나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고 있다. 그리고 출판사 일은, 해 보니까 진짜 재밌다고 했다. 지난봄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이런 이색적인 출판사와 책방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은퇴한 전직 대통령이 앞치마를 두르고 책방지기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설렜다. 가까이서 보니 그냥 동네 책방 사장님 같았다. 정치 대신 책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책을 만드는 일은 숫자로 딱 떨어지지 않는 종류의 기쁨을 준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아주 소박하지만, 이 ‘우리 집 책상 한쪽’에서의 출판 활동이야말로 자본 없이도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 7개월 동안 책 판 정산금은 15만 원 안팎이다. 회계 관점으로 보면 “지금이라도 접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온다. 직장생활로 모은 돈과 매달 들어오는 작은 연금이 받쳐주고 있으니 가능한 선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이 일은 “이걸로 먹고살겠다”라는 목표로 뛰어들기에는 너무 불안정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출판을 생활비가 아니라 “삶의 한 축”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일이 가벼운 취미는 아니다. 한 권이 나오기까지 노트북 앞에서 보낸 시간, 삭제하고 다시 쓴 문장들, 빨간 펜으로 만신창이가 된 원고를 다시 끌어안던 날들, ISBN과 POD, 서점 입점 절차 등 혼자서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헤쳐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걸 다 떠올리고 돈으로 계산하면 억울해져야 정상인데, 정작 내 마음속에서는 “아, 그래도 이 일을 하게 되어서 기쁘다”는 쪽이 크다. 책을 한 권 만들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약간씩 달라진다. 서점에 가면 책을 보면서도 “이 책 뒤에는 어떤 사람이 밤을 새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면, 베스트셀러 목록보다 내 책부터 검색해 본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남긴 별점과 한 줄의 리뷰에서, 다음 원고를 쓰는 힘을 얻는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돈보다는 “그래도 이 이야기는 세상에 한 번쯤 나와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은 1인 출판을 로맨틱하게 포장하려고 쓴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더니, 현실은 이렇더라”를 실컷 보여주고 나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해 볼 만하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조금 단단해진 마음, 다음 문장을 떠올리는 힘, 그리고 어딘가에서 내 책장을 넘기는 누군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까지 얻게 되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수익이 없어도 나는 아마 계속 책을 만들 것이다. 정산서를 덮고 나면, 이상하게 또 새로운 문서 파일을 열고 싶어지는 이 마음을, 이제는 꽤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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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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