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일단 뿌듯함과 해냈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내 오랜 시간 쏟아부었던 열정만큼 몸과 마음이 진이 빠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다시 그 글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며칠 동안은 글에서 시선을 돌리고 다른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처음에 느꼈던 감동은 사라지고 문장이 가볍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왜 이럴까, '혹시 나에게는 재능이 없는 걸까?' 쓰는 동안에는 온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썼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금 보면 어딘가 어색하고 억지로 꾸며낸 듯 가식적으로 보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떤 장은 통째로 없애버리고 싶고, 어렵게 쓴 문장을 지우는 순간엔 '지금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은 깊은 회의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바로 퇴고다. 퇴고는 무언가를 더 채워 넣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내는 일이다. 괜찮아 보였던 문장도 가차 없이 자르고, 애써 썼던 부분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퇴고는 글을 쓰는 일보다 훨씬 더 섬세한 안목과, 때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글쓰기는 조각가가 돌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와 닮아 있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야 비로소 본연의 아름다운 형태를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 매끄러운 흐름, 자연스러운 리듬, 군더더기 없는 표현은 단순히 한 번에 쓴 결과가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다듬고 고민하며 다시 쓴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퇴고를 시작할 때는 먼저 글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핀다. 도입과 결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중간 부분이 늘어지거나 어색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이때는 아직 세부적인 문장에는 손대지 않는다. 글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은 마치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건물의 설계를 다시 검토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글의 큰 흐름에 맞지 않으면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
구조적인 부분이 정리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문장을 다듬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가독성'이다. 독자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짧고 명확한 문장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나만의 퇴고 기준을 적용하며 점검해 보면 좋다.
- 문장이 두 줄을 넘는다면, 반드시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 '것', '의', '들', '을'처럼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거나 군더더기가 될 수 있는 조사를 먼저 지워본다.
- 접속사는 일단 전부 빼보고, 앞뒤 문맥을 이어주는 데 필요할 때만 다시 넣는 것이 좋다.
-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도 가급적 자제한다. 특히 '정말', '너무', '사실상'과 같은 말이 들어갔다면, 이를 지워도 문장의 의미가 온전한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인다.
- 피동·사동 표현(예: '만나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 보다는 의미를 더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띄어쓰기와 맞춤법 점검이다. 이 모든 퇴고 과정을 한 번에 끝내려고 하기보다는 단계를 나누어 접근하면 훨씬 수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잠시 글을 멀리하고 시간을 두는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다. 막 써낸 글은 오직 나 자신의 의도와 감정만 보이지만,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면 비로소 독자의 시선으로 글을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지우고 바꾸고 다시 읽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문장이 전보다 더 단정해지고 선명해진다. 처음에는 나만 알아보던 글이었는데, 퇴고를 거치면서 읽는 사람을 배려하게 된다. 표현을 다듬는 과정에서 글은 나만의 것이 아닌, 함께 읽는 것이 된다.
퇴고는 어렵다. 아무리 읽어도 ‘이게 맞나?’ 싶은 날이 많고, 때로는 고친 문장이 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혼자 여러 번 고치다 보면 오탈자 같은 작은 실수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국립국어원 맞춤법 검사기나 AI 툴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그리고 다시 문장을 읽으며 깨닫는다. 글의 완성은 끝맺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퇴고야말로 진짜 글쓰기가 시작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