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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Sep 20. 2023

느린 걸음으로 걷는 여행

섬들은 드넓은  푸른 바다 위 별과 같다

처음 가파도를 간 건 15~6년 전이었다.

그때의 가파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하고 소박한 섬으로 기억한다. 

누군가의 에세이를 보고 찾아갔던 가파도에 마음을 놓고 왔을까? 매년 생각이 나는 섬이다.


이젠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 관광객도 많아 그만 갈까 생각도 했지만 올해도 가파도에 왔다.

운진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10여 분이면 가파도에 도착한다.

몇몇 여행객들이 있긴 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아직도 가파도는 조용했다.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바다도 하늘도 지붕도 온통 파란색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키 작은 돌담이 올망졸망 모인 마을이 눈에 보인다.

가끔 오가는 여객선과 관광객을 빼면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섬들은 드넓은  푸른 바다 위 별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서 빛나는 별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다 어느 날 갑자기 별을 보러 간다.

그래서 나도 다시 그 섬에 간다.

 

'돌 우리 앉지 맙서양! 돌도 아파 마십'

작은 돌로 쌓은 낮은 돌담이 정겨워 보인다.

돌담 주인은 육지 관광객들이 자꾸 앉아 돌담을 망가뜨렸는지 나무에 글을 써 올려놓았다.

돌담에 앉지 말라는 애교 섞인 가파도 주인의 손 글씨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걷다 보니 누구 집 낮은 담벼락에 쓰인 글도 눈에 들어온다.


모슬포와 최남단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

가오리를 닮은 섬으로 

파도에 파도가 더해지는 섬으로

느린 걸음이 어울리는 섬으로 

제주 남쪽 바다에 낮게 서 있다.



남편은 가파도가 뭐 볼 게 있어 왔냐며 시큰둥하지만

화려한 도시, 볼 게 많은 도시에서 섬에 온 이유는 딱 하나 볼 게 없어서 이다.


크게 볼 게 없어 좋은 가파도를 다시 느리게 걸어 보고 싶어서 왔다.

느린 걸음이 어울리는 심심한 가파도가 좋다.



넓은 들판에 키 작은 야생화, 

너울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움직이는 풍차,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그림 같은 가파도에 또 마음을 빼앗긴다.


조용한 섬마을 

마을주민은 보이지 않고 여행객들만 가끔 보인다.

삐뚤빼뚤 당부의 글을 적어 놓은 가파도 주민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 마을 해녀 할머니들은 깊은 바다로 전복 따러 물질 나갔겠지?

아저씨들은 배 타고 갈치 잡으러 갔을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남편은 '카페나 식당 주인이겠지, '

작은 마을에 이쁜 카페와 식당, 소품가게가 많은 걸 보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걷다 보니 가파 초등학교가 보인다.

파란 하늘과 초록 잔디가 마냥 정겹다.

매년 한 명씩 졸업하는 학교의 학생은 늘 전교 일 등으로 졸업한다.

15개의 상장과 장학금까지 받는 행운의 학생이 졸업하는 그날의 졸업식 장면도 몹시 궁금하다.

전교 일 등 한 졸업생과 부모님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학교 운동장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그리 가고 싶었던 가파도도 내가 사는 마을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고  

큰 차는 금지라는 주인의 당부 어린 글이 있는 골목길은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길과 닮아있다.

엄마의 꾸중을 듣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던 골목길에서 나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다음날 숙제는 미뤄두고 또 그 골목으로 뛰어나갔던 내 어린 날들을 이 길에서 만난다.


그곳에 사는 사람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오는 위안 같은 것인지 모른다.


삶의 여정에서 느끼는 불안함!

친구들은 잘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

혹은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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